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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세미나 자료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동영상)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21-03-19 10:49
  • 조회수72

일시 및 장소 : 2021년 3월 11일 (목)  12:40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2층 프로방스홀    

주제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발표자 :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    


제32회 더 플랫폼 정기 세미나 : 최진석 교수 강의 42m18s - YouTube (동영상)  


아래 글은 최진석 교수의 강연 영상 녹취록인데 빨간색 글은 불분명한 내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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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진석입니다

 

제가 아마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30분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30분 정도에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 번 다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저는 요즘 정치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는 아니고 가끔 하면은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왜 철학자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느냐. 그러면 저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것이 철학이다.

공자도 정치인이고 노자도 정치인이고 플라톤이 왜 국가론을 썼는가.

칸트도 그때 당시, 정치문제 현실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그 다음에 철학자 칼막스도 그렇고, 우리는 아직 철학적인 높이에 올라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철학과 다른 여러 학문들과 굉장히 분리된 거로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가장 큰 일 중의 하나는 물론 해방이 가장 큰일이고, 그 다음에 6.25가 가장 큰일이죠.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6.25 전쟁 이후에 일어났던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을 하나 들자면 아마 인문학이 유행한 것. 인문학이 유행한 것 이것이 아마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을 유행시킨 그룹이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냐 아니면 국가를 운영하는 공무원들이냐 관료들이냐 아니면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들이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문학 유행을 일으킨 그룹은 기업인들입니다.

 

그럼 왜 기업인들이냐?

기업인들만 정신을 차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여러분들 계속 웃어 주셔서 굉장히 복잡한 심사가 듭니다.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자기 승패를 결정하는 생사를 좌우하는 직업은 상인 밖에 없습니다.

교수들 오류를 범하고 심지어 군인도 경기에 실패하고 해도 그렇게 인생의 큰 승패를 결정하는 일은 아닙니다.

 

관료의 정책적 오류도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자기 승패를 좌우하고 심지어는 생사를 결정해버리는 딱 한 번의 결정이 그런 과격한 전선에 있는 직업은 기업인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업인은 항상 생과 사의 경계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예민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실은 낡은 나라가 됐는데, 여기서 예민함을 유지하고 있는 직종은 현재는 저는 기업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업인들은 왜 인문학을 이렇게 유행을 시켰느냐. 기업인들은 지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은 굉장히 탁월하진 않지만 감각이 발전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더듬이라고 표현하는데 통찰력이기도 합니다. 고도의 긴장 속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감각적인 더듬이입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인문학을 해야만 하는 이런 느낌을 받는 거죠.

 

그럼 왜 우리가 인문학을 하느냐.

(그것은 인문학 안에서 말하는 칸트나 헤겔이나 셰익스피어나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콘텐츠가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콘텐츠는 인문학이 유행하기 전부터 도서관에는 꽉 차 있었습니다.)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뭐냐? 인문적 높이의 시선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한번 여쭤 보겠습니다.

지식에는 높낮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늘 대답을 하지 말자고 전부 다짐을 했나요?

지식의 높낮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지식에는 높낮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뭐 더하기 빼기보다 삼차방정식이 높죠.

 

모든 ‘학’들은 지식체계인데 이 지식이 특정한 방법론과 범위로 묶인 것, 이걸 우리가 ‘학’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지식에는 높낮이가 있다. ‘학’은 지식으로 되어 있다.

경제학, 물리학 학문들 사이에는 높낮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높은 학문, 낮은 학문 구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상을 살 때 제일 주의해야 될 게 뭐냐면 감각을 믿지 말고 논리를 믿으라는 겁니다. 감각을 믿으면 안 되고 논리를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깨달음이라고 그럽니다.

다시 한번 여쭤볼게요.

좋은 식사하시고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학문은 지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문은 높낮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서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분은 지금 내 논의를 따라오지 않은 분들이고 끝까지 자기를 믿는 분들입니다.

이건 삼단 논법에 가장 기초 문제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기 전공을 생각하고 학문들 사이의 높낮이가 있으면 안 된다고, 지식은 높낮이가 있다! 여긴 다 동의 하셨죠? 지식은 높낮이가 있어요.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지식은 높낮이가 있다. 학문은 지식으로 되어 있다.

학문은 높낮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논리적으로 높낮이가 있어요. 학문은 논리적으로는.

그럼 간단히 여쭙겠습니다

물리학하고 경제학은 어느게 높습니까? 물리학이 높죠.

그럼 물리학하고 화학은 어느게 높습니까?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우리가 지금 버려야 될 가장 중요한 버릇이 어쩐지 그럴 것 같다 이걸 버려야 됩니다.

 

정확히 지적으로 인식을 해야 됩니다.

화학하고 물리는 어느게 높아요? 물리가 높죠.

 

(화학 원소 주기율 보다 전자계수입니다.)

화학하고 생물학은 어느게 높아요? 화학이 높습니다.

 

경제학하고 물리학하고 높낮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은 자기 전공을 가지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이거는 그냥 지적인 높낮이입니다.

인격적인 높낮이가 아닙니다. 이거는 최근에 나온 노벨경제학상 중에 한 다섯 명 정도가 물리학자들입니다. 물리학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지만 경제학자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노벨물리학상 못 받습니다.

물리학은 경제학을 컨트롤 하지만 경제학은 물리학을 컨트롤 할 수 없어요.

수학하고 물리학은 어느 높습니까? 수학이 높습니다.

 

자, 오늘의 주제입니다

 

수학하고 철학은 어느게 높습니까? 철학입니다.

이걸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드릴 수 없으니까 (간단히 말하면 추상 정도입니다.)

어느게 더 추상적인가 인간이 탁월한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은 두 가지에 능통해야 됩니다.

하나는 추상, 하나는 은유 메타포 이 두 가지입니다.

추상과 은유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높은 데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따라갑니다.

그러면 경제학하고 정치학은 어느게 높습니까?

어느게 더 추상적입니까? 경제학입니다.

경제학의 많은 내용은 수로 표시할 수 있어요.

근데 정치학의 많은 내용들을 다 수로 표시할 수 없습니다.

정치학하고 법학은 어느게 높습니까?

여기 법학 전공자들이 많으신 거 같은데 제가 이 문을 편히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치학하고 법학은 어느게 높아요?

그건 말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인간이 사는 무대는 두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인간이 만든 것 아니면은 안 만든 것입니다.

만든 것을 문명이라 하고 안 만든 것을 자연이라고 합니다.

남성분들에게만 여쭙겠습니다. 남성분들 중에서도 결혼하신분들에게 여쭐게요.

함께 사시는 사모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지 않습니까?

네 죄송하지만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부인을 사랑할 수 없게 태어났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기가 해석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인간은 부인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석한 부인을 사랑합니다.

부인들께서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 남편은 자기한테 해석된 존재로서 있습니다.

 

자기가 해석한 사람. 인간은 이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면서 그것을 체계화 합니다.

그것이 세계를 통제하는데 효율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걸 우리가 지식이라 그래요.

인간이 사는 무대는 두 덩어리가 있습니다.

한 무대는 인간이 만든 덩어리, 문명 인간이 안 만드는 덩어리, 자연 여기에 대한 지적 체계가 또 두 조각으로 나뉩니다.

방향과 원리에 관련하는가.

방향과 원리, 의미에 관련하는 학문 그것을 자연에 관해서는 ‘이학’이라 하고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방향과 원리를 실현해 내는 것 이거를 ‘공학’이라고 그럽니다.

문명에 관한 학문이 두 덩어리로 나뉘어요.

방향과 원리에 관한 ‘인문학’이 있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회과학’이 있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사회 과학이나 공학은 실용 학문이고 인문학이나 이학은 비실용 학문이라

그러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이학이 됐든 인문학이 됐든 공학이 됐든 사회과학이 됐든 전부 실용학문입니다.

어떤 높이에서 그 실용성을 구현하느냐 이것이 달라지지 인문학이 실용적이지 않고 이학이 실용적이지 않은 것?

인간한테는 인간이 이 문명을 건설하고 지금까지 실용적이지 않은 일은 하나도 한 것이 없습니다. 다 실용적입니다.

인문학은 인문학적 실용성을 보이고 이학은 이학적 실용성을 보이는 거예요.

지식의 높낮이가 있는 거예요.

 

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움직이는데 핵심 인사이트가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나오면 그 사회를 후진국이라고 그럽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나온 인사이트가 중심 기능을 하는 것, 이거는 인사이트가 인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적 높이를 말하는 겁니다. 지식의 높이를 말합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나온 인사이트가 중심기능을 하다가 사회가 볼륨이 커지고 깊어지면 커지고 다양화 되면 법학이나 정치학으로 컨트롤이 안 됩니다.

그럼 한 단계 올라서야 돼요.

그때 학문들을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이런 류의 학문들입니다.

이런 류의 학문들이 중심 기능을 하는 사회를 우리는 중진국이라 그럽니다.

이 중진국이 볼륨이 커지고 경제경영으로 관리하던 이 중진국이 볼륨이 커지고 좀 다양화 되면 이걸로 더 커진 볼륨과 다양성을 감당을 못합니다.

그러면은 인사이트가 한 단계 올라가야 돼요.

그 인사이트 한 단계 올라갈 때 이 때를 뭐냐?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적인 높이로 올라서서 인문학적 인사이트가 중심 기능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인문학 CEO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USA 투데이'라는 신문에 들어가서 한번 쳐 보십시오.

한 4년 전, 5년 전 조사인데 미국에서 1등부터 1,000등까지 기업 가운데 경제경영을 전공해서 CEO를 맡는 경우는 3분의 1도 안 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인문학 출신들입니다.

그것은 뭐냐? 창의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방향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아는 조지 소로스 펀드매니저 세계에서 제일 센 펀드매니저 다섯 명 가운데 금융을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조지 소로스 철학박사입니다.

짐 로저스 역사학도입니다.

인문학이 실용적으로 발휘되는 단계로 올라설 때 그 때 그 나라를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선진국이 볼륨이 커지고 다양화 되면 인사이트가 인문학에서 나오는 걸로도 부족합니다.

그때가 되면 이제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 이런 민속학 이런 데서 나옵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할 때 제일 먼저 한 연구가 고고학입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고고학적 콘텐츠가 문제가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높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문학이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을 하는 것은 뭐냐?

인문학적 높이의 시선 때문에 그래요.

인문적 높이의 시선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지하기 위해서 인문학이 필요하지 인문학 안에서 이미 해 놨던 플라톤의 얘기를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 아닙니다.

물리학도 그렇습니다.

화학도 그렇습니다.

모든 학문들은 다 그것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 높이로 어떻게 세계를 관리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점이다.

오바마 대통령 때 초기 국방부장관이 물리학자입니다.

그것은 뭘 말하는가? (국방의 문제를 물리학자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인류가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팬데믹이 어느 경로로 이동할 것인가, 어떻게 터질 것인가 하는 것을 밝히는 자들은 방역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다 물리학자 아니면 수학자들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 세계를 실용적으로 다루는데 당신의 시선의 높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

인간은 자기가 가진 높이의 시선 이상을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시선의 높이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선의 높이라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러면 왜 그 이전까지는 그러지 않았는데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인문적 높이의 시선을 필요로 하게 됐는가?

그건 뭐냐? 그것은 우리나라가 똑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중에서 누가 제일 똑똑하냐?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은 기업인들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간상 건너뛰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처한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뭐냐?

중진국 함정에 갇혔다는 겁니다.

중진국 함정에 갇혔다는 것은 뭐냐?

중진국적 높이 이상의 시선을 가져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뭐냐?

유사 이래로 한 번도 선진적 높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인류의 높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하니까 굉장히 우리가 선진적 높이에 있는 거 같지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거기에 도달해 본 적이 없어요.

가장 큰 약점이 뭐냐? 선진적 높이, 즉 일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일등 기업을 있어도 일류 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삼성을 일류 기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류 법률이 뭔지 모릅니다. 일류 정치가 뭔지 모릅니다.

일류 삶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일류의 일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일류의 교육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일류로 살다 가는 것이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인지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본 적은 있지만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그럼 어떻게 되냐? 일류를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일류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않기 때문에이류적 높이에서만 살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입니다.

문명을 건설하는 활동을 문화라고 그럽니다.

무엇인가를 해서 변화를 야기하는가?

문명을 건설하는 활동을 문화라 그럽니다.

문명은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제일 아래층이 구체적인 물건입니다.

이건 구체적인 겁니다.

그런데 이 물건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돌아다니는 태어나는 좋은 길이 있어야 좋은 물건이 나옵니다.

태어난 다음에 물건이 잘 돌아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물건이 번영을 합니다.

그것을 뭐라고 그러냐? 시스템 혹은 제도 이렇게 말한다.

(이거는 반구체 반추상입니다.)

 

서울은 제도입니까 물건입니까? 서울은 시스템입니다 제도입니다.

그런데 건물들도 있습니다. 제도이면서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시스템은 다 구체와 추상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좋은 물건이 나오는 좋은 길, 제도, 시스템, 이다음을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위의 힘, 이걸 우리가 생각, 사유, 문화, 윤리, 도덕, 가치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생물학의 영역이 제도를 만들고 이 제도가 좋은 물건을 만듭니다.

이건 뭐 역사적 사례로 말씀드릴 수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면은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

물건에만 집중하면 물건에만 빠지고 집중하면 이걸 후진국이라고 그럽니다.

제도에 집중하면 중진국이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가치, 문화에 집중하면은 선진국이라고 그럽니다. 철학의 영역입니다.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논쟁은 별로 의미 없어요.

그래서 떨어지기 때문에 하는데 동아시아에는 동양에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사유 수준이 없었습니다.

동양에는 그 말을 어떻게 보면 동양에는 철학과 과학이 없었습니다.

철학과 과학이 없었어요. 동양에는 뭐가 있었냐.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있었고 기술이 있었어요.

15세기부터 시작되는 과학적 세계에서 동양은 기술만 붙들고 있다가 과학을 하지 않아서 아편전쟁 때 과학과 철학으로 무장한 서양에 의해서 완전히 패배하게 됩니다.

근데 이것을 안 중국과 일본은 중국과 일본 근대화 일본의 탈아입구, 중국의 서양을 배우자

이 내용은 모두 뭘 갖추고 있냐. 철학과 과학을 습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철학과 과학을 습득하는 국가 개조를 해내지 못했고 그때 또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걸 아직 못 하고 있습니다.

그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거예요 우리는 이 방향, 원리, 생각 이 영역을 우리가 철학이라 하고 그 밑을 제도라 하고 그 밑을 문명이라고 하는데 이 상위 철학, 문화 여기에 도달한 인문학 여기에 도달해서 그걸로 세계를 통제하는 나라를 우리가 선진국 혹은 제국 이렇게 표현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도 높이까지 왔어요.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가장 수준 높은 논쟁이 제도 논쟁입니다.

제도 논쟁 이상의 논쟁은 아직 우리는 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우리는 뭘 하고 있느냐, 공수처를 만드냐 안 만드냐 내각제를 하느냐 대통령중심제를 하느냐 여기서 우리가 플랫폼을 중심으로 해서 일대 의식개혁과 사회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계속해서 제도 논쟁에 빠져 있을 겁니다.

왜 그러냐? 제도 논쟁을 넘어서서 사유 논쟁, 철학 논쟁 문화 논쟁을 할 역량이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밑의 단계에서도 계속 상승하는 일은 김대중 대통령 때 끝났고 그 나머지는 국가 레벨의 리더십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제도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제가 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러분들 한번 읽어 봐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제가 개정판을 냈는데 이 말을 집어넣기 위해서 내가 넣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가 우리가 어떻게 번영시킨 나라인가.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는 없다. 이것이 그 책을 쓰는 주제입니다 핵심 가치입니다.

왜 그 호소를 하느냐 우리 실력으로 우리한테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는 도달 할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 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실력과 인식 능력 그 다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그럼 그 우리가 익숙한 방식이란 것은 뭐냐. 아까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헤르만 헤세도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알려고 사느냐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

무엇을 알려고 하는 인식의 희미한 불꽃이 시작될 때 그는 비로소 인간이 되지.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존재예요.

그 인식과 설명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존재예요.

인식하고 설명할 때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체계화해 놓은 것을 우리가 지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지식은 존재 형식을 달리 만들어 놓은 것이지 모든 지식은 그것 자체가 현실입니다.

이 물도 지식으로 되어 있어요. 이 마이크도 지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 앉아 계시는 포메이션 전부 지식입니다.

다 문장들이에요. 다 수식입니다.

 

다 이게 음표들이에요. 다 지식의 구성물들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생산한다 그 말은 세계를 생산한다는 뜻입니다.

지식을 수입한다 그 말은 세계를 수입한다는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지식생산국이 아니라 지식수입국입니다.

지식을 생산한 적이 없다. 지식수입국이다.

우리가 내가 아무리 좋은 논문을 쓰고 뭘 했어도 저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은 다 뭐에요? 수입자로서 확대재생산하는 일 외에는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서강대학교에서 꽤 괜찮은 교수였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따라 하기를 꽤 괜찮게했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 지식 생산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것은 뭐냐 세계를 생산한 경험이 없다.

이것도 지식이에요 .

여러분들 우리나라에서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생각하는 물건 가운데 여러분들이 보기에 하나라도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물건 있으면 하나만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한글 하나 분명히 보입니다.

혹자는 이태리타올 이야기 하는데 그거는 문명을 이야기 하는 데는 통제력과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서 파는 물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전부, 대부분 다 99%가 다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거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을 봐 줘야 산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지식생산국이 아니라 지식수입국이었다.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지식수입국으로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다 했어요.

그러면은 지식을 생산한다 이 말은 세계를 생산한다 이런 뜻입니다.

세계를 생산하고 지식을 생산할 때 인간은 뭘 가지고 생산 합니까?

 

생각!

생각을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건을 먼저 만든 것이 없다 그 말은 우리가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 뜻입니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인문학이 유행한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이제 생각하지 않은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넘어가야 된다.

지식수입국에서 지식생산국으로 넘어가야 된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을 우리가 지적통찰이라고 합니다.

이 지적통찰이 필요한 시점에 그 통찰이 살아 있는 기업인들이 ‘인문학을 해야 되겠다’라고 말한 겁니다.

 

(1820년대를 역사에서는 그레이트 디버전스라고 합니다.)

 

이 때, 세계질서가 완전히 딱 짜여져요.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생산도구와 새로운 생산관계가 만들어낸 새 세상입니다.

1820년에 새 세상이 열렸어요.

그 새 세상이 열린 그 패러다임 때 패러다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이 패러다임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그때 1820년대 선진국이 후진국으로 떨어지는 예가 없습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선 예가 없어요.

이 간격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1820년대부터 그 중에 한 나라가 돌출적으로 여기 가깝게 갖다 붙은 나라가 있어요. 유일하게 이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갖다 붙이지는 못 했어요.

1820년 이후로 후진국이 중진국으로 올라선 예는 있습니다.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필리핀 이런 나라들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탑 10위 하던 나라입니다. 그 나라도 중진국 상위 레벨에 도달한 다음에

선진국으로 가려면은 선진국으로 올라서지 못 하면은 급격한 하강이 시작됩니다.

익숙한 방식에 익숙한 방식과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도달할 것에 이미 도달해 버리면 그 도달한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는 하강이 시작됩니다.

제가 조급해진 이유는 이 하강이 대한민국은 이미 시작됐다. 이미 시작됐다라고 보고 그 시작이 이미 크다. 많이 됐다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문제는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까지 올라오는 찬란한 역사를 썼는데 그 다음에 선진국으로 올라서느냐 올라서지 못하느냐.

이것이 사실은 간단하게 이야기 한 우리의 운명입니다.

 

선진국으로 올라서면 더 자유롭고 더 독립적이고 더 풍요로운 삶이 있을 거고 올라서지 못 하면 하강이 시작될 것이다. 상당히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런데, 저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이 나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정답에 가깝습니다.

 

심리적이나 감정적이 아니라 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비굴하게 살 준비를 해야 된다. 이것이 저는 정답이라고 생각을 하고 상당히 우울했습다.

국가로 만들어 볼래 안 만들어 볼래?

이걸로 질문이 바뀌어야 정상적인 지식인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저는 정상적인 지식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 그 다음에 하나는 패러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선진국과 후진국과의 교체는 불가능합니다.

 

역사 속에서 그렇게 해 본 예가 없어요.

네덜란드랄지 영국이랄지 이런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때는 다 판이 깨질 때입니다.

새 판이 열릴 때예요.

 

그런데 대한민국한테 축복이 내렸어요. 우리는 중진국 상위 레벨에 딱 적절한 때에 도달했습니다. 20년 전에만 도달 했어도 우리는 엄청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어때요? 판이 깨지고 있어요. 이미 판이 깨졌어요.

그것을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판이 깨지는 이 상황. 판이 깨져야만 후발주자들한테 기회가 있습니다. 판이 깨질 때 이 때, 우리 국력이 제일 강할 때입니다. 해보려면 지금 밖에 없다, 지금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딱 하나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 새로 전개되는 이 판을 이용해서 우리가 이 한반도에서 한 번도 있어보지 못했던 선도국가로의 진입. 이것을 해 볼 절호의 찬스다.

그런데 그걸 그러지 않고 지금 제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점들은 왜 거꾸로 가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선도국으로 올라서느냐.

이제 답은 나왔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여러 가지 방법과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그 시작은 어떻게 하느냐 첫째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일류국가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야망을 갖는 일이에요.

일류로 살다 가겠다는 야망을 갖는 일입니다.

중진국 레벨의 찌질이로 살다 가지는 않겠다 하는 야망을 갖는 겁니다.

이 야망이 없이는 어떤 일도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식수입국이기 때문에 지식수입상들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태도는 뭐냐.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 이외를 하지 않습니다.

이해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그거 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왜? 생산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산이란 것이 뭐냐?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역사가 되는 일입니다.

스스로 역사가 되는 일에 한 발짝도 뛰지 못하면서 계속 모여 앉아서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면서 그 심리적 만족 속에서 나는 역사 속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잠든 백성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나입니다.

중진국 상위 레벨과 선도국가 문턱에서 흔들리고 있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 이것을 결정해야 되고 그 결정에서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야망을 가져야 될 때다.

무슨 일이든지 하려면은 세 가지가 있어 맞춰져야 됩니다.

하나는 ‘정당성’ 우리는 아젠다,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정당성을 요리조리 길을 찾아서 구현할 ‘지혜’, 그 다음에 ‘세력’, ‘정당성’과 ‘지혜’와 ‘세력’이 없이는 어떤 일도 되지 않습니다.

중진국 레벨에 있어서 익숙해진 지식인들은 정당성과 지혜만 가지고 밤을 새서 토론하고 이야기합니다.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면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