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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수출 대외환경 탓할 필요없고 기다린다고 살아나지 않아 팀코리아 '전투력'을 키워라 : 조환익 전 KOTRA·수출보험공사 사장
  • 작성자강수경
  • 작성일시2023-07-05 10:54
  • 조회수3
체력 허약해진 수출, 다시 살리려면

◆ Big Picture ◆


8개월째 수출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이고, 무역적자도 1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하반기부터는 잘하면 수출이 증가세로 호전되고, 그 조짐이 6월 실적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일희일비할 것 없다. 반도체 수요가 늘고 전반적인 시장 상황도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이며 유가도 떨어져 무역수지가 개선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 수출은 추세적인 정체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한 분석을 여러 전문가라는 이들이 내놓지만 대동소이하다. 수출 지역과 품목의 편중, 공급망 문제, 우리 상품의 혁신 문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따른 진입장벽 등이다. 다 맞는 분석이지만 하루아침에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대책도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무역 금융, 규제 완화, 지역과 품목의 다변화, 친환경 신제품, 신기술 개발 등이고, 전략을 논의하는 회의는 춤추고 있다. 대통령 주재 회의, 부총리·장관 주재 대책회의, 차관급 실무 대책회의, 애로 타개 태스크포스(TF) 등 어지러울 정도다. 회의에 불려 다니는 기업인들은 항상 그 얼굴들이고, 회의가 끝나고 어색한 파이팅 자세를 취하며 찍은 사진들이 보도자료를 메꾼다.

이 시점에서 보다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이 상황을 파고들어 갈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수출은 한국의 '혼'이자 '생명줄'이라는 엄중한 사실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장기적인 전략도 긴 호흡으로 짜나가야하겠지만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수단과 지혜를 짜내야 한다.


100대 국정과제에도 못 들었던 '수출'

수출의 '소중함'과 수출 외에는 한국이 살아나갈 길이 없다는 '절박감'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에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대해 뿌리 깊은 비호감을 가진 그룹들이 학계를 포함해 1964년 수출 1억달러 시절부터 존재해 왔다. 수출은 박정희 정권의 친재벌 정책의 일환이고, 수출 중심 경제정책으로는 자본도 기술도 없는 한국이 일본 등 선진국의 하도급 기지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닐 화물차도 없는데, 경부고속도로가 왜 필요하냐는 주장까지 하던 사람들이다. 이런 목소리들이 지난 정부 내에서 살아나면서 수출길이 막혀도 임금을 올리고 집값을 내려 가용소득을 늘리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풀 뜯어 먹는 소리'가 정책화돼 수출의 소중함을 희석시켜 왔다.


또 일부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수출은 상품 경쟁력만 있으면 다 잘될 텐데 정부의 수출 지원은 오히려 기업의 자율성만 손상시킬 것이라는 주장으로 수출의 절박감을 이완시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시 '100대 국정 계획'에 수출의 '수'자도 들어가는 꼭지 하나 없었고, 대통령이 수출을 직접 챙긴 기억도 없다. 수출이 장기 호황일 때는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제 추세 전환의 시점에는 수출이 국가 운영의 핵심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




물꼬를 터주는 수출 지원 정책이 필요

정부의 시각과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재정과 금융에 의한 해결책만 찾다 보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거시경제 정책은 항상 양면성이 있다. 수출이 부진할 때 과거에는 환율이라는 정책 수단으로 대응하면 약효가 있었고, 이는 지난 두 번의 경제위기 때는 작동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원화값이 많이 내려가도 수출은 경쟁력이 붙지 않고,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 부담만 더 커진다. 최근의 원화 강세 현상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오히려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역설도 나온다. 이제는 수출의 상품 가치와 시장 진출 지원을 위한 미세하고 정성스러운 정부와 지원 기관의 손길이 더 절실하다.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반전을 하려면 흐름을 타야 한다. 수출도 그렇다. 새로운 흐름의 물꼬를 정부나 지원 기관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그 사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KOTRA 사장이었던 나는 엉뚱하게 해외의 바이어들을 한국에 불러들여 수출상담회를 대대적으로 해보자고 정부에 제안했었다.


다들 제정신이냐고 했다. 수출하기 위해 바이어를 찾아다녀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이 세계적 엄동설한에 한국 상품을 사기 위해 제 돈을 들여 한국에 오겠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타내고 'Buy Korea'라는 대규모 수출상담회장을 열었다. 대박이 터졌다. 시장 상황이 어려울수록 바이어들은 큰 장에서 싸고 좋은 공급망을 찾을 것이라는 계산이 주효한 것이다. 코엑스에서 실내 공간을 다 써도 부족해 외부에까지 상담장을 만들고, 깜짝 놀랄 수출 계약 실적을 이루어냈으며, 이것은 우리 수출기업들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 제2의 IMF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한국을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게 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유럽의 많은 공항에 들어간 탑승교도 이때의 성과다. 거창한 거시경제 수단보다는 실질적으로 기업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물꼬를 터주자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여러 기업을 모아놓고 제한된 발언 시간 속에서 늘 하는 대책회의보다는 개별 기업 심층면담 등을 통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지휘하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영국 기업은 교전국에 군복지를 팔았다. 실크로드를 찾아가는 것은 상인들이다. 기업은 장만 펼쳐주면 어떻게든지 방법을 찾는다. BTS 10주년 축제에 전 세계 MZ세대가 몰려왔다. '소비재 수출',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럴 때 한국 상품 홍보 이벤트가 따라야 한다. 신한류의 흐름이 K식품, 패션, 뷰티 등 새로운 수출 강물이 되어 주도록 장을 만들어주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것도 정부 몫이다. 이번 파리에서의 부산엑스포 유치 과정이나 베트남에서 보여준 대통령부터 정부 인사와 기업인까지 한마음으로 수행한 대한민국 영업팀의 활동은 이어져야 한다.


다시 결집해야 할 통상 진용

국제 정세는 미·중·러와 유럽이 사활적으로 뒤엉켜 있고, 공급망 전쟁 속에서 일상적인 통상 외교만으로는 수출 애로를 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미국은 내년에 대선을 치른다.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불변의 국정 원칙이 있다. 바로 '미국 우선주의'인데,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맹방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것도 없다. 권력은 백악관과 의사당에서 나눠 갖고, 선거에 가까울수록 상하원의 목소리는 힘이 실린다. 의회는 원래 '보호주의' 성향이다. 의원들이 가장 챙기는 것은 출신 지역의 이해관계다. 워싱턴의 외교관이나 어쩌다 회담이나 방문하는 장차관이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교섭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기업의 로비력만큼 실효성이 있는 것은 없다. 그 지역에 공장을 지어주고, 농산물을 사줬으며, 그 지역 소재 기업과 제휴도 했다. 이는 선거구민을 움직였고, 이만큼 강력한 약발은 없다.

1980년대 중반 CTV 등 한미 통상 마찰이 극심할 때 이를 극복한 것은 우리 기업의 힘이었다. 주요 대기업들이 비즈니스도 없는 워싱턴에 지사를 내고, 최고 에이스들이 주재하면서 상하원 의원과 보좌관 및 언론인들을 매일 만났다. 무역협회와 업종별 단체들도 정식 로비스트 등록을 하고, 워싱턴에서 걸맞은 활동을 했다. 지금은 몇 개가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역협회 중심으로 민간 로비망의 재결집이 필요하다.


미·중 냉전 관계 속에서 한중 관계도 불편하지만 이럴수록 기업 간 연대는 더욱 소중하게 돌봐야 한다. 중국에 대한 편중된 경제 의존 관계는 개선해야 하겠지만 동남아, 인도에서 그만한 대체 시장을 당장 찾을 수 없다. 중국이 아쉬워하는 첨단산업 공급망과 기술협력 분야에서 영리하고 실리적으로 처신해야 한다. 이를 최전선에서 해낼 수 있는 것도 기업이다. 정부에서는 이를 조율하고 막후 지원을 하는 방식을 찾아보자.

유럽의 무기는 '기후변화' 대응이다. 이를 소홀히 다루면 아예 시장 문이 닫힐 수도 있다. '탄소감축'은 무소불위의 칼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빨리 복원돼야 하지만 '숨겨진 비관세 장벽'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도가 제3시장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도 모든 제도나 관행이 개도국 수준이다. 이 시장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역시 기업인들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하고, 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상단(商團)들이다. 정부의 교섭망과 기업의 로비망이 한 팀이 되어야 하겠다.


기업은 제 역할 다하고 있나?

우리 조선산업이 세계 1등이 되기까지의 원동력은 '조선 3사(현대·삼성·대우)의 앙숙 관계'였다는 말이 있다. 치열하고 무자비하게 싸웠다. 정부에서 회의를 하면 3사 대표자들이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 외국의 공격을 받을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팀이었다. 오일 쇼크로 원가가 치솟고 수출 기력이 떨어질 때 우리 기업들은 오일 머니를 취하기 위해 중동으로 뛰어들어 가서 사막을 누비고 다녔다. 종합상사가 점차 수익이 떨어지니까 자원 개발을 한다고 호주, 중남미, 동남아 등 자원 광산을 찾아다녔다. 그 후 정부가 다 망쳤다. IMF 경제위기로 하루아침에 기아·대우 등 모 기업이 사라지고 납품줄이 끊기니 중소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디트로이트로 쳐들어가 GM의 갖은 푸대접과 일본의 견제를 받아가며 거래를 성사시켰다. 원전 수출, 방산 수출은 정부가 주도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완성시킨 우리 민간 수출기업들의 헌신이 있었다. 이 모든 성취의 근본에는 우리 기업의 야성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기업 문화, 사회적 분위기와 몇 번의 총수 수난이 있어서 그런지 과거의 야성과 도전의식이 많이 사라진 듯하여 아쉽다. 수출위기를 맞아 그들의 전투력이 내공을 갖춰 돌아올 것으로 기대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 때였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자 '한국투자공사' 설립안이 국무회의에 올라왔다. 진보 성향의 국무위원이 주류였던 분위기에서 벌떼 같은 반대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부족한 외환을 대기업의 대외 영업에 쓸 수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이때 노 대통령 특유의 버럭이 터져나왔다. "그만해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해외에서 안 벌면 어떻게 먹고살아요?" 한국투자공사가 설립되는 순간이었다. '한국 밖으로 뛰어야 산다.' 위기 때마다 수많은 실전을 겪어본 나에게는 다른 길이 안 보인다. 여야 가리지 말고 이 시점에서 공유해야 할 한국의 '혼'이고, '사는 줄'이다.




[조환익 전 KOTRA·수출보험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