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낮추고 포용해야… 與, 정신 차릴 기회 준 국민에 감사를”
[정치에 할 말 있다] [1]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
총선을 6개월 앞두고 다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타협과 대안 없이 마주 달리는 정치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로 이어지며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연금, 노동, 교육 개혁 등 시급한 현안도 정치에 막혀있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개혁 과제들도 국회 앞에 막혀 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은 17%포인트 패배라는 민심의 경고장을 받았다. 대통령에게는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야당 역시 변화와 혁신 없이 정권심판론과 반사이익에만 기댈 경우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원로 및 전문가, 그리고 다양한 국민 목소리를 통해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그중에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바람과 쓴소리를 연쇄 인터뷰 형식을 빌려 들어보기로 했다.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 교수는 이날을 포함해 본지와 가진 두 차례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시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도교수로, 오랫동안 윤 대통령을 지켜봐 왔다. 송 교수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늘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선 “대단한 노력으로 우리 국민이 풍성하게 과실을 따 먹는 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윤 대통령이) 각 분야의 전문성이 높고, 인품이 좋은 인재들을 많이 쓰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으니까 확 따라올 것”이라며 “대통령도 뉴 페이스(새 인물)를 쓰고 싶다는 욕심은 확실히 있으신 것 같다”고 했다.
송 교수는 정치 양극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비전을 가진 인재가 정치권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를 조속히 해소하고 기후 위기, 인구 절벽, 중국 문제 등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3대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 양극화가 도를 넘었다.
“예전엔 언중유골의 언사를 날리더라도 사람 감정에 치명상을 주는 말은 안 했고, 낮에 다퉈도 밤엔 마주 앉아 상대를 이해하려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처럼 한마디만 하면 그냥 그걸 물어뜯고 욕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회 현상이 정치화한다는 점이다. 사법도, 문화도, 역사까지 사회 각 방면이 과도하게 정치화, 극단화돼 죽기 살기로 싸운다. 정치 수준이 낮아지니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가진 새로운 인재가 정치판에 등장하기 어려워진다. 극렬한 정치, 한심한 정치가 국가의 미래까지 갉아먹는 무서운 결과다.”
8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9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방탄 국회 회기 꼼수 각성' 등의 내용을 담은 피켓을, 더불어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을 노트북에 부착하고 있다./뉴시스
-극단화보다 심각한 것이 정치의 저질화다.
“전부는 아니지만 국회를 완전히 개혁하는 게 첫걸음이다. 장기표가 하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처럼 돈을 받고 사람을 많이 쓰는 의원이 드물다. 지금 국회가 국민의 내년 한 해 살림을 결정하고 있는데, 국정 질의를 하는 것을 보면 많아야 본회의장에 50명, 적으면 25명만 앉아 있다고 한다. 양심이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참에 국회의원을 ‘대단한 자리’로 만들지 말고, 당선되면 월급 대신 출석 수당을 주고, 보좌진 9명 대신 연구 보조 한둘 붙여드리면 된다. 여당은 대통령 눈도장만 찍으려고 하고 야당도 운동권 논리에 매여 있는 지금 상태로 가다 보면 똑같아진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무기력한 여당
-그래서 국민의 선택이 중요한 것 아닌가.
“국민이 더 똑똑해지고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반 국민은 생업에 바쁘다. 그래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와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할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설상가상으로 가짜 뉴스까지 나라를 휘젓고 있어 걱정이다. 대한민국의 장래는 기후 위기, 인구 절벽, 중국 문제 3가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렸다. 중국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한국에 큰 영향이 미치는 나라다. 앞으로 10년, 20년 우리를 괴롭힐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이고 범사회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 교수는 이날을 포함해 본지와 가진 두 차례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시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여당이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국정 방향 전환 같은 조언보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이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라는 것이다. 정권을 맡는다는 책임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 여당엔 쓴 약이 돼서 정신을 번쩍 차렸으면 좋겠다. 여당을 보면 모든 현상을 용산과 연결시키더라. 자기네도 맡은 소명이 있고,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는데 대통령만 바라보니 무기력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각자의 소명과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게 해준 국민에게 감사하고 그 뜻을 헤아리길 바란다. ”
인품 좋은 인재 쓰면 확 따라올 것
-대통령이 실용보다는 이념을 너무 내세웠다는 의견도 있다.
“ ‘윤 대통령의 레토릭(수사)이 굉장히 강해졌는데 그래서 얻는 게 뭐냐’고 나에게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나는 철 지난 이념 전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 지난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홍수에 떠내려가는 형국이 돼버렸다. 이걸 바로잡자는 노력 아니냐. 세부 사항은 재고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에게 의견을 묻는 분들께 ‘견해가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한 일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전남 목포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대통령실
-외교 안보의 성과가 지지율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외교적으로) 대단한 노력이고 우리 국민이 풍성하게 과실을 따 먹는 때가 있을 것으로 본다. 밖에서 이뤄 낸 성과가 국민에게 전달되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고, 대통령도 덕을 보는 일이 없이 임기가 끝날 수도 있다. "
-대통령의 지지율 정체에 다른 요인이 있나.
“국내에선 중요한 문제들이 (여소야대 국회로) 손발이 묶여서 못하는 게 있지만 대통령은 최고의 가정 교육과 좋은 공적 교육을 받았고 본인도 책을 굉장히 읽어 인문 사회적 소양이 대단하다. 겸손하고 포용하면 사람들, 특히 중도파가 대통령과 현 정부를 알아주고 따라올 것이다. 정치적 쟁점 때문에 견해를 달리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면 더 많은 호응이 있을 것이다.”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교통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지만 국정 운영 최종 책임은 정부 여당이 진다.
“무한 책임이 있고, 어려운 상황은 맞는다. 다만 대통령은 정치에 오래 몸 담은 사람이 아니고 누구에게 신세 진 게 없는 사람이다. 기존 정치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지지율이 1%밖에 안 되더라도 이런 이런 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국민들도 평가해 주면 좋겠다. 개혁이 필요하다면서도 개혁을 통해 손해 보는 사람들은 욕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행복과 특전을 미리 앞당겨 다 써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개혁이 돼야 한다.”
-과거 강연에서 “좌파 정부는 상대를 제압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우파는 폐쇄적이고 휴머니즘이 없었다”고 했다. 현 정부는 어떤가.
“좌파는 사회주의 같은 교조적 생각에서 못 벗어났다. 운동권 출신인 내 제자도 많지만, 이야기 듣다 보면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인데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 그에 비해 우파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고 휴머니즘이 없다. 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는 겸손하고 휴머니즘을 갖춘 정부가 될 여건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 높고, 인품이 좋은 인재를 많이 공급해서 쓰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으니까 확 따라올 것이다.”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있다./이태경기자
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개혁 첫걸음
-인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인사를 잘하면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달라질 거다. YS(김영삼 정부) 때 ‘인사가 만사’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무슨 산악회 출신 등 과거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 공부도 안 한 사람을 많이 쓰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빚진 게 없는 사람이니까 전문성 있고 인품 좋은 사람을 데려다 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통령도 뉴 페이스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확실히 있으신 것 같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려는 의욕이 대단히 강한 분이다. 주변에서 ‘대통령이 언제 잠을 자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더라. 새벽 1시, 2시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즉각 읽고 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송상현 명예교수는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형사재판소(ICC) 초대 재판관과 재판소장을 지냈다. 무보수 명예직인 한국백혈병 어린이재단 이사장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으로 봉사했고, 오피니언 리더들의 토론 모임인 ‘더 플랫폼’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의 손자다.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 때도 대학 시절 은사인 송 교수에게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교수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도 무슨 책을 보내주면 기어이 다 읽더라. 남달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