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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광야의 묵상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21-02-2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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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머니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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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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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창립 제60주년 기념 특별기획>

문단실록(文壇實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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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말을 하며 살아가는가? 타자(他者)가 있기 때문이다. 말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은 타자에게로 향하는 소통의 체계다. 신도 말(로고스)로써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렇게 타자를 만들고, 그 타자와 말로 소통했다.

사람은 언제나 타자와 함께 있는 공동존재다. 소통 없이는 공동존재가 되지 못한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타자와 소통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인도에 홀로 떠밀려온 난파선의 표류자도 햇빛과 바다와 구름, 나무와 새와 물고기, 그리고 언젠가 찾아와 닻을 내릴 구조선의 뱃사람들, 그 타자들과 더불어 있다. 현실에서든 의식 속에서든.

소통의 관계는 말로 이뤄진다. 입말이든 손짓말이든 몸짓말이든, 모든 말은 타자를 지향한다. 독백마저도 나를 타자로서 대하는 말이다. 입말만이 아니다. 글말도 마찬가지다. 입말이 눈앞에 가까이 있는 타자를 향한 말이라면, 글말은 시간적·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타자를 향한 말이다.

먼 거리 너머의 타자에게는 편지로 글말을 띄우고, 먼 시간 뒤의 타자에게는 역사로 글말을 전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비밀스런 일기장은 훗날의 나에게 남기는 성찰의 글말이다. 그 훗날의 나조차도 지금의 나에게는 타자로 남아있다.

내가 말을 건네는 타자,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타자는 누구인가?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타자를 만난다. 그 최초의 타자는 누군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만나는 2인칭, 그 타자는 바로 어머니다. 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1인칭인 한 몸이었다. 그 1인칭이 최초의 2인칭으로 다가오는 타자가 어머니다. 아이는 그 타자의 품에 안겨 맨 처음 모국어를 배우고, 말로 소통하는 법을 깨우친다.

‘타자의 철학자’ 에마뉴엘 레비나스는 타자를 ‘여성적 신비’라고 불렀다. 사랑은 둘이 하나로 융합되는 일원성이 아니다. 사랑은 둘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타자의 이원성이 있기에 감동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타자는 ‘내 것’으로 포섭되거나 ‘우리 것’으로 환원되는 대상이 아니다. 타자는 나와 절대적으로 다른 이원성의 신비요, 빛 앞에서 스스로를 감추는 수줍음이며, 빛 너머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신비의 여성성이다. 빛 뒤로 사라지는 타자와 빛을 추구하는 나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심리학자들이 아니마(anima)라고 부르는 여성성은 여자만의 것이 아니다. 여자의 무의식 속에 아니무스(animus)라는 남성성이 있듯이, 남자의 무의식 안에도 아니마의 여성성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무의식의 세계인 꿈속에서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배운 모국어로 듣고 말하고 소통한다.

모국어는 최초의 여성성에게로, 그 아니마에게로 귀소(歸巢)한다. 본디 1인칭인 한 몸이었다가 최초의 2인칭으로 다가오는 신비의 타자, 그는 꿈결 속의 아니마요, 그 아니마는 어머니다.

정의의 신이 왜 남신(男神)이 아닌지, 왜 꼭 여신(女神)이어야 하는지 그 이

유를 알 듯하다. 정의는 주먹이 아니라 미소요, 냉혹한 사형대가 아니라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남이 세우기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세우는 것, 남이 베풀기 전에 내가 먼저 베푸는 것, 곧 사랑이다.

사랑을 저버린 정의는 가짜 정의다. 오늘 우리 사회는 과거에 대한 가혹한 단죄, 현재에 대한 냉소와 부정, 미래에 대한 회의와 불안으로 마냥 우울하기만 하다. 정의는 분노의 응징이 아니라 따뜻한 구원인 것을… 그래서 괴테는 말했던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고.

남성은 집을 지었고, 여성은 가정을 만들었다. 가정의 중심은 여성이다. 아버지가 가장(家長)이라면, 어머니는 가심(家心)이다. 내가 지어낸 말이지만, 나는 가장보다 가심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눈앞의 먹잇감을 놓고 피 터지게 싸울 때, 여성은 저들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었다.

남성들이 산과 들판을 휘저으며 수렵·벌채·남획으로 생태계에 피를 흩뿌릴 때, 여성들은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생명을 보듬어 안았다. 남자가 이를 갈며 무기를 만드는 동안,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평화를 경작했다. 남성성은 문명의 세계를, 여성성은 문화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문화와 여성성은 동의어가 아닐까? 문명 앞에 문화는 신비한 여성성의 타자로 다가온다.

인생의 오랜 경험을 품은 노파가 자라투스트라에게 충고한다. “여자에게 가려면 채찍을 잊지 말라!” 니체의 이름을 여성혐오자의 명단에 올린 경구다. 그 니체가 수상쩍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짝사랑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 그리고 오랜 친구이자 연적(戀敵)인 파울 레와 함께 찍은 사진인데, 그 사진에서 정작 채찍을 들고 있는 것은 니체가 아니라 살로메다. 두 남자는 마치 두 마리 말처럼 살로메가 탄 마차 앞에 우두커니 서있을 따름이다. 금방이라도 살로메의 채찍이 그들을 때릴 듯한 기세다.

‘여자에게 채찍을!’이라는 니체의 경구는 어쩌면 “여자에게 가려면 채찍 맞을 각오를 하라”는 뜻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사진에서 아니마에게 채찍 맞는 아니무스, 어머니에게 혼쭐나는 아들의 모습을 본다.

니체는 한술 더 떠 “진리가 만약 여성이라면…”이라는 기이한 글도 썼다. 그는 진리마저도 아니마로, 여성성의 신비로 받아들였던가? 이쯤 되면 니체의 이름을 여성혐오자의 명단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예찬론자의 명단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초인(Übermensch)의 철학자 니체는 드디어 이런 고백에 이른다. “초인을 낳는 능력을 갖춘 것은 여성이다.” 초인도 자신을 잉태한 여성성을 초월할 수는 없다. 초인에게도 여성은 초월되지 않는 타자, 극복되지 않는 타자로 남는다. 여성성은 언제나 수줍음을 머금고 빛 너머의 어두움으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미합중국 군대가 인디언의 땅을 강제로 사들이기 위해 대포를 앞세우고 달려왔을 때, 수와미족 추장 시애틀은 미국의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글을 띄웠다. “그대들은 저 하늘이나 땅의 따스함을 어떻게 돈으로 사겠다고 하는가? 마치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에서 울려오는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 대지를…”

백인들의 기계문명은 인디언의 정신문화를 넘어설 수 없었다. 저 인디언들에게 대지는 본디 한 몸이었던 최초의 타자, 어머니가 맨 처음 불어넣어준 무의식의 숨결,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비로운 여성성이었기에.

그 신비한 타자는 지금 내 안에 고요한 어머니의 속삭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내 생애 최초의 2인칭, 한 몸이었다가 타자로 다가온 어머니, 그 신비로운 아니마를 나는 피멍든 가슴처럼 아파오는 그리움 없이는 차마 혀끝에 올리지 못한다.

어려웠던 시절, 내 어머니는 모처럼 맛깔스런 식탁을 차려놓고는 갑자기 입맛이 없다면서 반찬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내곤 하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차디찬 우물물을 길어 손빨래를 했고, 한 땀 두 땀 손수 지은 이불로 온 가족을 덮어 잠재웠다. 깊은 밤 어쩌다 눈을 뜨면, 어머니는 언제나 내 곁에 엎드려 무슨 말인지 모를 침묵 같은 속삭임으로 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니, 나는 그 침묵의 속삭임이 무슨 말인지 안다. 그 때는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 귀에 또렷이 들려온다. 뼈 속까지 켜켜이 틀어박힌 당신의 아픔은 쏙 빼놓고 온통 자식과 이웃들에 대한 안타까운 호소로 충만했던 그 속삭임을… 아들이 사들여온 새 자동차를 놔둔 채 어머니는 차멀미가 있다면서 웬만한 거리는 굳이 걸어 다니곤 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환경론자들의 각성은 내 어머니의 차멀미 핑계보다 훨씬 늦은 편이다. 골프니 에어로빅이니 헬스클럽이니 별의별 것 다 해본 후에야 ‘걷는 것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더라’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이즈음의 깨우침도 평생을 걸어온 내 어머니의 가녀린 두 다리보다는 둔해도 너무 둔한 편이다.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백성의 고초를 온몸으로 겪고 전쟁 통에 피난살이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의 신산(辛酸)한 삶에 비하면, 내 삶이란 것이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이미 레테의 강을 건넌 그분에 대한 고마움과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온다.

빈주먹 맨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렇지만 나는 그분의 입에서 ‘힘들다, 죽겠다, 귀찮다, 못 살겠다’ 하는 따위의 푸념이 새어나오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얼과 숨결의 원천인 어머니의 애잔한 속삭임이 저 멀리 앞장서 말을 달리는 개척자의 호령처럼 내 게을러터진 영혼을 마구 흔들어 일깨운다. 나에게 맨 처음 모국어를 가르쳐주고 소통의 첫길을 열어준 어머니, 그 최초의 2인칭은 이제 더 이상 극복될 수 없는 타자도, 신비의 어둠속으로 물러나는 수줍음도 아니다.

본디 1인칭에서 헤어져 2인칭으로 다가왔다가 망각의 강을 되돌아 건너 다시금 1인칭으로 돌아온 어머니, 그 타자는 나와 다시 한 몸이 되었다. 나를 뱃속에 품었던 타자가 이제는 내 속에 부활하여 나지막이 속삭임을 건네 온다.

그 속삭임은 언제나처럼 알듯 말듯 침묵으로 다가온다. 그 침묵의 속삭임은 떨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삶의 폭풍에 지쳐 돌아온 아들을 아무 말 없이 품어 안는 넉넉한 가슴으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기나긴 가뭄에 마를 대로 말라버린 들풀의 갈증처럼 애틋한 목마름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또 말없이 그리움의 말을 띄운다. 내 최초의 타자가 가르쳐준 모국어로, 그 침묵의 속삭임으로.

이 우 근 (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숙명여대 석좌교수 /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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