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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와 여성 인권, 국제인권보 제627호 (2021.03.) : 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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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3-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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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manrights-korea.or.kr/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홈페이지 : 간행물 인권보 칼럼)  


일본군 위안부와 여성 인권

국제인권보 칼럼,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2021년 3월(제627호)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임지현

 

하버드 대 로스쿨 마크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가장 큰 논란은 식민지 조선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당시 일본 제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던 합법적 성매매 계약의 주체였다는 것이다. 인터넷 판으로 공개된 논문의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여러 그룹의 구미 학자들 사이에서 각각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치밀한 반론들이 나왔다. 그중 하버드 대학의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의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 카터 에커트 교수와 사학과의 일본 근대노동사 전공의 앤드류 고든 교수의 공동 비판은 비판점들을 간명하게 잘 요약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램지어 교수와 같은 대학에 있고 또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적 집착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비판은 더 의미가 크다.


에커트와 고든 교수는 램지어 교수 논문의 허위 사실과 실증의 주요 오류를 짚어내고 해당 논문이 학문적 진실성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결론내리고, 전문가들의 꼼꼼한 평가 과정을 거쳐서 논문 게재 방침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램지어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가 그 가족이 위안부 모집책이나 위안소와 체결한 실제 계약서를 한 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일본인 위안부 계약서를 근거로 단순 추정했다는 점이다. 램지어 교수가 상하이 위안소 계약서라며 제시한 자료는 조선인 위안부가 아니라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일본인 여성과 맺은 계약서이며, 조선인 위안부의 진술이나 서면 증언도 제시하지 않았다.


한국인 위안부들이 계약에 따라 일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버마의 위안소 계약서도 일본인 성매매 여성이 2년간 일한다는 내용이므로, 램지어 교수가 무리하고 왜곡된 자료 인용과 편견에 찬 선택적 자료 활용 등으로 학문적 성실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정도의 논문에 대해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나 여가부 장관이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집권당의 대변인 성명은 과했다. 에커트와 고든 교수의 비판처럼 미국 동아시아 학계의 학문적 자정 능력에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사실을 구명하려는 학문적 노력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이 논쟁이 민족주의적으로 해소될 때 여성 인권에 대한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순결한 소녀는 여성 인권을 유린당한 무고한 희생자지만, 일본군 위안부로 일한 일본의 직업여성들은 계약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로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의 유곽 경험자인 박0리 님의 절절한 지적처럼, 일본군 위안부는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일부 민족주의적인 네티즌들의 SNS가 암시하듯이, 순결한 조선인 소녀가 아니라 계약에 따른 일본인 직업여성이라면 인권이 짓밟혀도 좋다는 식의 논리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억이 품고 있다면 그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지구적 기억공간에 던진 보편적 의미를 스스로 깍아 먹는 일이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앞으로의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을 막으려는 지구적 시민사회의 보편적 기준이 되었듯이,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은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의 야만성을 일깨움으로써 여성 인권의 향상을 위한 인류 모두의 도덕적 자산이 되었다. 자신은 일본군 성노예가 아니라 ‘여성 인권 활동가’라고 소개한 이용수 님의 당당한 외침은 일본군 위안부와 ‘미투’ 운동을 동시에 부정하는 일본의 그리고 전 세계의 부정론자들에게 가장 통렬한 일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