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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가장 위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국제인권보 제627호 (2021.03.) : 윤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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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3-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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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manrights-korea.or.kr/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홈페이지 : 간행물 인권보 칼럼)  


이 세상의 가장 위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국제인권보 칼럼,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2021년 3월(제627호)


윤영각(파빌리온자산운용 회장, 전 삼정 KPMG 회장)

 

현대국가에서 인권의식이 민주주의의 선진성과 우월성을 보여주듯이 한국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한민족이란 감성문제보다는 국제사회속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시대적 의식일 것입니다. 인권이란 보편적이기에 앞서 가장 개인적인 가치일 텐데 어쩌다보니 우리는 북한주민들의 개개인을 잊어버린 채 북한인권이란 포괄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공감의 여지를 스스로 지우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지독하게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일텐데 그들이 듣지 못하는 북한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 적잖은 허탈함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내가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도 북한을 살아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자그마한 위로가 된 시간들을 잠시 돌아봅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구로구의 한 작은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예배를 위해 입장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교회의 예배시간은 모두가 그러하듯이 경건하고 정숙하여야 할 텐데 워낙 이 교회만은 예배시작이 당장인데 뛰어다니는 애들과 또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로 소란스럽습니다. 어깨높이가 가지런히 맞춰져 엄숙한 다른 교회와는 사뭇 다르게 의자에 앉은 아이들, 엄마무릎에 앉은 아이들로 들쑥날쑥하기도 하지만 설교 중간에 우는 애기들을 달래기 위해 의자소음을 내며 예배장을 나가는 여인들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한두 번의 일이 아닌 듯 목사는 태연히 설교를 이어갑니다.

  

이 여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이라고 불리며 싱글 맘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탈북여성들입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무제한적이며 무자비한 감시와 통제, 고문과 투옥, 폭행과 처형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만날 수 없는 북한주민들과 주변의 탈북민들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북한을 떠나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2년,3년에서 10년 이상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차가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수년 동안 중국에서 신분이 없이 중국공안당국에 체포되어 북송될 위험을 상시 느끼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공안이 이들을 신고하는 자들에게 상금까지 준다고 하니 숨어 살아야 할 그들에게 사람이란 존재가 공포 그 자체였음을 상상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북여성들의 대부분이 인신매매로 중국농촌에 팔려간다고 하니 사람답게 살고자 떠난 북한이건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지옥인 것입니다. 

 

UN은 북한을 떠난 사람들을 국제난민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보호하고 송환을 금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탈북민들은 난민이 아닌 불법월경자로 체포되면 북한으로의 송환이 우선입니다. 북송뿐만 아니라 그들이 마주하는 또 다른 위험은 인신매매입니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접촉과 국제사회의 압력은 때로 중국정부로 하여금 탈북민들의 한국행을 묵인하게도 합니다. 우리가 정부적 차원에서, 국제적 차원에서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국경내의 탈북민들을 보호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권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인 권리이지만 인권사상과 인권존중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국민의 인권과 북한주민의 인권이 다른 것이 아니며 내 주변의 인권에 대한 함의가 전부가 돼서도 안 될 것입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수십만 명의 북한여성들이 숨어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인권법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에서도 인간으로서 가지고 태어난 생명을 지키고자 살아낸 탈북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대한민국에 입국하기까지 겪은 고생들이 생생한 인권사례가 되어 북한주민들의 인권실상이 더욱 알려지고 공감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