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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동맹과 파트너 사이의 균형외교? , 매일경제 (2021.04.07.) : 조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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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4-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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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동맹과 파트너 사이의 균형외교? (naver.com)


[글로벌포커스] 동맹과 파트너 사이의 균형외교?

입력
安美經中은 현실성 없는 얘기
필요 따라 오락가락하는 상대
누가 신뢰하고 묵인하겠나
외교 중심 잡으려면
원칙과 기준에 대한 합의부터


2015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은 종종 미·중 사이에서 실패한 외교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입해 대미관계를 그르쳤고, 미국 눈치를 보느라 뒤늦게 가입해 중국에 생색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연 그럴까? 당시 중국은 우리가 AIIB에 가입해 주기만 바랐고, 미국은 AIIB가 국제 수준의 거버넌스를 갖출 때까지 가능한 한 가입을 늦춰 달라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경제적 실리와 창립 멤버에게 주어지는 이사국 지위 확보를 위해 늦어도 AIIB 출범 전에는 가입해야 한다는 점을 미국에 이해시키고, 호주 등과 공조해 미국 우려가 해소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한 후 마지막 순간에 가입했다. 긴밀한 협의로 동맹국과의 신뢰를 지키며 경제 외교적 실리를 챙기고, 중국도 만족시키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2014년 중국은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정상회의에서 '아시아 신안보(New Asian Security)' 구상을 밝히고 이에 대한 합의문서를 채택하려 했다. 당시 중국이 회람한 개념문서에는 '신안보가 기존의 동맹을 대체한다'는 문안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런 문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고, 결국 우리 요구가 관철돼 그 문안은 삭제됐다. 한미동맹을 훼손할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면서 중국을 설득한 결과였다.

2013년 말엔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해 한·미·일과 긴장을 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까지 확대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이로 인한 미·일과의 마찰도 열린 소통으로 피해 갈 수 있었다. 분명한 입장과 논리로 대응해 주변국 간 '불만족의 균형'을 통해 외교적 실리를 확보한 것이다.
반면, 사드 문제는 '3 No'라는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다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전격적인 배치 결정을 하는 바람에 중국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고, 정부가 바뀐 후에는 대중국 '3불(不)' 약속으로 스스로 손발을 묶고 미국의 신뢰까지 잃는 우를 범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될수록 양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사안별로 상대를 설득하는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한다. 그때그때 국익에 따라 결정한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전략적 사고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고, 결과적으로도 갈 지(之)자 걸음을 걷게 될 확률이 높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신뢰와 설득의 힘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에 비례한다. 미·중 사이 어디쯤 우리가 서 있을지 상대방이 예측할 수 있어야 신뢰도 지키고 설득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현실성도 없는 얘기다. 상대국 입장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나라를 누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겠는가? 지구적 차원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국이 이를 묵인할 리도 없지 않은가? 동맹국과 전략적 파트너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동맹은 동맹이고 파트너는 파트너인 것이다.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 외교가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정책적 판단의 토대가 될 원칙과 기준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해야 할 일이지만 학계, 언론이라도 나서서 길을 밝혀줘야 하는데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마음의 주인이 뚜렷이 중당(中堂)에 자리 잡고 있으면 도적이 문득 변하여 집안사람이 되리라'는 채근담(採根譚)의 경구가 가슴을 파고드는 이 아침이다.

[조태열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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