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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의 갈등구조와 외교문화, 국제인권보 제628호 (2021.04.) : 조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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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5-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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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manrights-korea.or.kr/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홈페이지 : 간행물 국제인권보)    


우리사회의 갈등구조와 외교문화  

국제인권보,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2021년 4월(제628호)  


조태열(전 외교부 차관 / 전 유엔 대사)


  고()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은 30여년 전 '외교'지에 기고한 '외교문화'라는 글에서 1980년대까지 우리사회를 주도한 두 줄기 큰 흐름이 '군사문화' '경제문화'였다면 1990년대 이후 펼쳐질 상호의존의 새시대는 '외교문화'가 주도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군사문화의 획일주의와 경제문화의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닫힌 사회를 열린 사회로 바꿔 나가지 않으면 지속적인 사회안정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열린 사회는 상이한 가치관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협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조화와 공존의 윤리를 요구한다. 이는 바로 외교의 본질이자 목표이기에 그는 외교문화의 창달을 통해 열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사회가 이런 변화를 이뤄 내지 못할 경우 훗날 심각한 국력 누수현상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끝없는 갈등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보며 그의 견해가 탁견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사회는 내부문제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잃고 길을 헤매고 있다. 세대, 이념, 계층별로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대립과 갈등의 단층선(斷層線)이 뒤얽혀 있는 형국이다. 단선적 사회에서 다원적 사회로의 질적 변화를 겪으면서 그 단층선은 더욱 넓고 깊게 패여 가고 있다. 우리사회 내부의 불평등과 교육의 이념화, 분단국의 내재적 한계로 인한 대결적 사고, 근현대사의 질곡이 초래한 피해의식, 지정학적 환경이 잉태한 폐쇄성과 강대국 콤플렉스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신문화적 토양과 정치생태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적, 제도적 갈등조정 메커니즘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사회의 갈등 원인을 유교문화의 지나친 '도덕지향성'에서 찾는다. 한국인은 "자신이 믿는 도덕을 손에 들고 언어를 연마하여 그 날카로움으로 죽음을 건 승부"에 나서며, 한국에서는 "단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표현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도덕 지향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자의 행동이 언제나 도덕적이지는 않으므로 거의 모든 도덕이 상처를 입고" 있고, "그곳을 노리고 다른 세력이 굶주린 늑대처럼 도덕 지향적인 공격을 가해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한국의 역사는 ''''이 되어가는 역사이다. ''은 항상 새로운 ''이 되어 역사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을 만들어내고 배제한다. 그것은 이상에 빛나지만 시체가 쌓이는 '()의 쟁탈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갈등구조를 정신사적 측면에서 꿰뚫어보는 예리함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스스로를 객관화할 때 가장 또렷이 보이는 법이다. 오구라 교수의 혜안이 찾아낸 우리사회의 정신문화적 토양에 깔려 있는 갈등구조의 근원적 해소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타협과 조화, 공존을 거부하는 도덕 쟁탈전에서 우리사회를 건져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처에 산재해 있는 갈등과 대립의 단층선은 서서히 모습을 감추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갈등은 국부 질환용 처방약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질 개선과 면역력 강화를 위한 보약을 함께 장기복용해야 치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 보약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외교문화 확산 노력이 더 늦기 전에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전 외교부차관/주유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