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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강대국 콤플렉스의 외교적 비용, 매일경제 (2021.05.19.) : 조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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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5-2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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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강대국 콤플렉스의 외교적 비용 (naver.com)

[글로벌포커스] 강대국 콤플렉스의 외교적 비용

입력
 
 수정2021.05.20. 오전 9:37
양극적 친미와 반미·대중굴종
日엔 감정적·러시아는 무시
상대국 따라 표변하는 태도
그 기저엔 강대국 콤플렉스
그 비용이 참으로 막대


30여 년 전 한국계 미국인이 쓴 '추악한 한국인(The Ugly Korean)'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만난 한국 사회의 각계 인사들이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얼마나 못난 행태를 보이는지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과장됐을진 몰라도 사실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필자도 통상외교 현장에서 종종 그런 행태를 목격하곤 했다.

분별없는 대미 행태는 지도층 인사들에게서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굴신(屈身)의 모습만 띠는 것도 아니다. 세대, 이념, 계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2008년 광우병 파동처럼 폭력과 괴담 수준의 유언비어로 둔갑해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기도 한다. 친미와 반미 모두 지나침은 콤플렉스의 소산이다. 전자는 미국의 제도와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 권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가 하면, 후자는 미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념적 편견에 사로잡혀 무조건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한미 안보, 통상 이슈를 둘러싼 끝없는 국내 갈등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굴종적으로 보일 만큼 유화적 자세를 보일 때가 많다. 2000년 한중 마늘 분쟁 당시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응은 과거 유사한 한미 통상 분쟁에서 보인 반응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비판의 화살이 과도한 조치를 취한 중국보다 분쟁을 미숙하게 처리한 우리 정부를 겨냥하고 있었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위압적 조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응도 생각보다 훨씬 절제된 것이었다. 오히려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시위가 더 격렬했다. 무슨 연유일까? 수천 년에 걸친 양국 간 교류를 통해 우리 국민의 뇌 속에 DNA처럼 굳어진 그 무엇이 있어서일까? 우리 후손들은 한미 관계보다 훨씬 더 어려운 한중 관계를 관리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 이후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은 그런 상황이 우리 앞에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음을 말해준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도 불행한 과거사만을 탓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미묘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사이에서는 그냥 지나쳐버렸을 이슈들이 유독 한일 관계에서만 뜨거운 논쟁으로 비화한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해 일을 그르친 경우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 때로는 오만하기까지 한 태도를 보여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만큼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초강대국이었는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우리 외교에 러시아는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강자에 대한 허세는 콤플렉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상대국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우리 사회의 강대국 콤플렉스가 당당하고, 전략적이고, 균형 잡힌 외교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음을 많은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문제가 강대국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심지어는 정부의 외교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를 덮어놓기보다는 공론화해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그로 인해 종종 막대한 정치, 외교,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고, 나라의 모습이 초라하게 비친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강대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 오만함이나 무례함이 있다면 그 원인의 태반은 우리 스스로가 제공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교수의 말처럼 '우리만 모르고 있던 우리 안의 보석'을 찾아 '과도하게 위축된 자신감과 지나치게 굴절된 자존심'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조태열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