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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돌봄의 의미 (2021.06.02.) : 송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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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2021-06-0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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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2021 국제 돌봄정책 컨퍼러스 -코로나 19와 돌봄경제: 지속가능한 돌봄사회로의 전환- 기조발표





 세션6: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돌봄의 의미

 

1. 서론

제게 주어진 제목을 돌봄의 의미를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하여 새롭게 조명해달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정의의 관점에서 돌봄을 신시대에 맞게 재구성해야 함을 논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유엔이 채택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s goals)를 일별하고 그곳에 포함된 정의(justice)와 포용(inclusion)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정의에 관한 개념적 논의를 간결하게 소개한 다음 돌봄의 현대적 의미를 찾고 젠더 저스티스(gender justice)의 관점에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화두를 던져 보고자 한다.


2.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와 2030년 의제

유엔개발정상회의가 17가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채택하고 이를 2030년까지 모두 함께 달성하도록 결의한 것이 2015년 9월이었다. 그 이후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도 진화를 거듭해왔다. 애당초에는 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점차 경제성장, 사회통합 및 환경보존에 관한 구체적 내용으로 확대발전을 하다가 다시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전반적 향상을 추구하는 균형개념으로 변천해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현재에는 주로 학자들이 환경적 지속성, 경제적 지속성 및 사회적 지속성을 상호 연결하여 논하면서도 각자의 전공분야를 추가 또는 접목하여 각 분야에서 점차 인류의 미래를 위한 균형적 발전전략을 논의하는 경향이 현저해지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나 아직 여러 개념의 모호성과 복잡성을 극복하지 못한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교육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며 변화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을 제고하고 그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장점이 있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파괴가 불가피하므로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빈곤퇴치, 일자리 확보와 경제성장 등에 대한 중점 전략이 항상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도시재생, 에너지확보, 공유 경제 등에 관한 논의가 체계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환경과 경제 중심의 논의는 UNDP나 UNESCO등을 중심으로 사회영역으로 확장되어 정치, 정책, 인권, 고용, 교육, 인구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쟁점을 함께 다루게 된 것도 값진 수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로 인하여 기존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논의에 인권, 정의, 평화, 평등, 안전, 다양성 등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요소 내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녹아들어가면서 커다란 인식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2030년 의제는 이 같은 논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다양하고 야심적이며 포괄적인 과제를 수렴할 수 있게 되었다.


3.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의 실현과 정의

유엔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특히 SDGs 16은 여러 발전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 및 수단으로서 정의를 내세웠다. 즉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구현하고, 모두에게 정의에의 접근(access to justice for all)을 보장하며 모든 수준에서 효과적이면서도 책임감 있고 포용적인 제도를 구축하자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년 의제의 중심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키는 정의롭고, 평등하고, 관대하며 공개적이고도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세상을 이룩하려는 비전이 담겨있다. 사실 정의는 17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관통하는 실(threads)과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분야에 정의를 확대하지 않으면 빈곤을 종식시키고, 불평등을 감소시키며, 평화와 포용을 촉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정의를 위한 개혁이란 왕왕 처음부터 대중으로부터 거리가 있어서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제도의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 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의시스템의 중심에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각종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의 중심에도 이러한 정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소위 사람중심의 정의(people-centered justice)라는 접근방법은 정의에 관한 대중의 다양한 필요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실제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사람중심의 정의는 그 자체가 공개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하는데다가 다른 부문 즉 보건, 교육, 주거, 고용, 돌봄 등과 제휴하고 협력해야만 현대적 눈높이에 맞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의를 정치적 최우선순위로 내세워서 대중에게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건, 교육, 사회적 보호, 일자리 등과 같은 부문은 사람중심의 정의의 실현에 가장 필수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4. 정의란 무엇인가

그러면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에 관한 개념은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러나 법학분야에서 고전적으로 논의되는 정의는 형사적 정의(criminal justice)와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가 아닐까 생각한다. 형사적 정의는 사회규범을 위반한 자를 처벌함으로써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를 구현하여 사회 평화를 유지한다는 오래된 개념이다(no peace without justice). 그런데 신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피해자신탁기금(Trust Fund for Victims)을 통하여 응보적 정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범죄 피해자(예컨대 소년병)를 사전 또는 사후에 선제적으로 돌보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와 치유적 정의(reparative justice)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적 정의는 공정과 형평을 핵심 요소로 하는 배분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응보적 정의를 내포하는 수가 있다. 최근에는 존 롤스(John Rawls)가 주장하는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와 이와 약간 입장을 달리하면서 포스트 신자유주의시대의 공정성을 논하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에 이르기까지 복잡다기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다. SDGs 16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람중심의 정의를 돌봄 노동에도 적용하여 새로운 준칙을 정하고 종래의 가부장적 시스템과 인식을 뜯어고치려면 그 정의의 핵심은 양성 간에 공정과 형평을 중심으로 하는 젠더 저스티스(gender justice)라고 할 수 있다.


5. 돌봄 노동과 정의사회

과거에는 아이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등과 같은 돌봄 노동(care work)이 전연 주목받지 못했다. 공식적 대가를 받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거나, 아니면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무한봉사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간에 돌봄 노동은 주로 여성이 한다는 점, 보수를 못 받거나 받더라도 적게 받는다는 점, 노동의 가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공통적 특징 때문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집안에서 무임금으로 제공하는 무한봉사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이문제가 마침내 사회적 이슈로 주목을 받고 '돌봄 경제(care economy)'라는 분야까지 탄생한 데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여성의 경제활동 진출로 돌봄 노동을 더 이상 집에서 무임금으로 수행하기 어려워진 점, 둘째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인 돌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돌봄 노동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저개발국의 여성들이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로 빈번하게 이동하여 노동인력의 국제적 이동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는 점(예: 조선족 간병인이나 아이 돌보미/ 필리핀 가사도우미 등)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돌봄 노동을 점차 경제적 관점에서 아동, 노약자 및 장애인 등의 복지수요를 충족시키고 관련 산업의 육성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독일이나 덴마크에 이어 우리 정부가 수립한 2019년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에도 돌봄 기술의 개발 및 자원 활용을 통하여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여기에는 사회서비스, 돌봄 기술, 주거, 의료 등 다양한 전문분야가 함께 관여되어있고, 서비스 확충 및 연계, 돌봄 산업의 육성, 서비스제공인력의 교육 등 독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다각적 정책 방안을 담고 있다.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서비스(community care)를 시범사업으로 채택하고 돌봄 경제가 산업혁신과 일자리 확대를 통한 경제적, 사회적 포용의 작용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코로나로 인해 심화된 돌봄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고 보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돌봄의 사회적 의미와 경제적 가치에 세대간, 계급간 차이를 감안한 관련 정책 대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우선 당장에는 음지에서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일하는 돌봄 노동자와 같은 필수노동자들이 겪는 코로나 역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정부가 긴급구제해 주어야 한다. 건강한 가족과 가정이야말로 국가사회의 안정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상공인·중소기업·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도 마련하면서 기업 등 민간부문과 협력하여 각종 물적 지원 외에 가족 돌봄 휴가의 적극사용, 재택근무와 같은 융통성있고 포용적 노동패턴의 도입을 선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양성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기초로서 정의로운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리하여 정의로운 돌봄 체계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돌봄 사회로 점차 전환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정의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가능한 돌봄 노동 수행이 필수적이다. 특히 어린이 돌봄은 그 나라 사회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노인이나 장애인 돌봄은 국가, 사회적인 부담을 줄이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낸시 폴버(Nancy Folbre)에 의하면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분석대상에서 비시장적 요소와 돌봄 노동을 제외함으로써 여성과 어린이 및 가족을 소외시키고 돌봄 경제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이는 그들이 가정과 지역공동체에 기여함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시장과는 독립적으로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좀 더 많이 공급하도록 함께 제도적으로 노력함으로써 돌봄 책임이 세대간, 계급간 좀 더 형평에 맞게 분배되고 여성에게만 불균형하게 부과됨을 지양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돌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재조명하면 좋을까. 많은 나라의 국가발전계획에서 정의의 요소는 종종 생략되거나 망각된 연결고리임을 본다. 종종 국가경제는 정의를 고려하지 않고도 잘 돌아가고 건강과 교육은 개선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가 없이는 사람들은 그들의 잠재가능성이나 열망에 완전하게 도달하지 못하여 기회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정의없이 이룩한 발전은 확고하지 못하다.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으로 잠재적 불안정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의 고려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면 그 대가도 크게 마련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제공하는 단일한 처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마다 첫째 그 나라의 고유한 배경과 우선순위에 터잡아서, 그리고 둘째 인류보편적인 인권기준과 세째 2030년 의제의 완수를 위한 약속에 따라 정의에의 접근을 증진시켜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산업경제가 발달하여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하므로 정의롭고 공정한 돌봄은 최우선순위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성취도가 가장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강한 가부장적 인식 때문에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이에 걸맞지 아니하다. 특히 양성평등과 어린이권리보호의 면에서 몹시 취약하여 공정한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정의로운 돌봄을 위해서는 이같은 현실적 문제점을 세밀하게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종종 표출하는 다양한 새로운 열망에 잘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이처럼 새로운 기준에 따라 시스템이나 거버넌스를 바꾸는 것이 현실정치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미리부터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시행착오가 최소화될 수 있다. 또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른 강력한 부문과 경쟁할 수도 있으나 새로운 역할 담당자를 정의의 부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의에 터잡은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과 공유된 스탠다드는 결과공유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파트너를 다양화하면서 정의시스템의 일관성을 증진시킨다.

현재 각국의 논의는 주로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을 경제와 산업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므로 거버넌스의 큰 변화가 예고된다. 그리하여 복지의 대상인 돌봄 서비스의 외연을 넓혀 일자리 등 경제적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 대부분 국가의 돌봄정책의 무게중심인 듯하다. 그러나 돌봄경제의 문제는 그 실천적, 정책적 실현수단의 강구에 앞서 철학적으로 사회정의의 문제이고 그 중에서도 젠더 저스티스의 문제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돌봄산업 육성을 위하여 만드는 로드맵은 이러한 정의의 관점에 맞게 작성해야 한다. 어린이와 노인 및 장애인에게 필요한 돌봄이 무임금 또는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공급하였던 구조를 타파하고 이제는 세대간, 계급간 형평을 핵심기준으로 삼는 정의의 관념에 맞게 돌봄 책임을 재분배할 때가 왔다. 이것이 한국에서도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즉 인권, 정의, 평화, 안전,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개발협력, 기후변화 대응 등에도 들어맞는 방향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