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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와 숙의민주적 절차를 통한 대의민주제 보완, "정책이 보이는 도서관" 5월호
  • 작성자남궁근
  • 작성일시2022-06-08 11:08
  • 조회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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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와 숙의민주적 절차를 통한 대의민주제 보완

남궁근(서울과기대 명예석좌교수)

 

1. 대의민주제 보완의 필요성

대의민주제에서 정부의 주요 정책은 선출직 공직자를 중심으로 결정되고 이러한 정책을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이 집행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난제들의 복잡성과 이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면서 대의민주제에서의 전통적인 정책결정 및 집행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그리고 대통령과 단체장이 소속정당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선출직 대표와 국민의 의사가 불일치하는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20세기 후반 이후 전세계적으로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대안적 모형으로 시민들의 정책과정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와 더불어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대두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책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외부전문가와의 자문회의를 거치고, 관계 사회단체(기업, 시민단체 등)와의 협의과정을 거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정책의 사회적 수용성 및 정부신뢰 제고, 갈등예방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시민참여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필수적 요소로 인식된다. 특히 국민이 주도하여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의 시대를 열었던 2016년의 경험이 국민 스스로 정부의 입법과 정책결정 영역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음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높은 교육수준 및 생활수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유튜브 등 1인 미디어 확산은 이같은 변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2.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참여

시민참여(citizen participation) 또는 주민참여란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한다. 참여민주주의가 제도화된 형태인 시민참여 또는 주민참여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국가마다 활용 형태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활용되는 시민참여의 유형에는 여론조사, 공청회 또는 설명회, 주민투표,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 등이 있다. 여론(public opinion)이란 사회 문제와 정치적 쟁점에 대해 다수의 시민이 가지는 공통된 의견이나 태도를 말한다. 여론조사는 여론을 파악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일반 시민들은 실제 사건 또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기존지식, 가치관, 선입견 등에 따라 피상적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론조사로 파악된 여론은 다음에 살펴보게 될 숙의민주적 절차를 거친 공론과는 다를 수 있다. 또한 정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할 뿐이며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되므로 그 영향은 대체로 약하다.

쌍방향으로 진행되는 공청회(public hearing) 또는 설명회는 중요한 정책사안 등에 관해 해당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이해당사자, 그리고 일반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의회·행정기관·공공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회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 상임위원회, 행정부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요 정책이나 제도의 입안 및 개선을 목적으로 공청회를 빈번하게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기관 주도로 이루어지는 공청회는 참여시민의 영향력이 약한 편이며 정책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 내지 행정 편의에 흐를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형태인 주민투표(referendum), 주민발의(initiative), 주민소환(recall)제도는 일반국민이 투표를 통하여 제시된 의사를 종합하여 그 결과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므로 영향력이 강력한 참여 유형이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는 스위스를 비롯하여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채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민투표, 주민발안 및 주민소환제도가 법적으로는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요건이 엄격하여 실제 활용은 거의 없는 편이다.

주민참여예산제 또는 주민자치회는 토론을 거치므로 의사소통 면에서 양방향이기 때문에 주민투표와 차별화되는 양방향 시민참여 유형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2010년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에 확산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읍동 단위에서 주민자치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2015년부터 자치단체별로 조례를 제정하여 운영하도록 했으나, 실제 운영은 지지부진한 편이다.

3. 숙의민주적 참여와 공론조사

1) 숙의민주주의의 특징

숙의민주주의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시민들의 열린 소통과 이성적 토론 절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제 또는 참여민주주의와 차별화된다. , 숙의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토의를 거쳐 투표 대신 합의에 의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보며, 숙의 과정에서 개인이 어떤 공적 이슈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보와 주장의 교환을 통해 시민의 선호가 상호간에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최종판단이 내려지는 숙의의 통합적 기제를 강조한다.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은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구현하는 것이므로, 모든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하여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 이상이 실현된다. 그러나 정책결정 이전에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면 이를 숙의적 참여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시민참여자 수가 많아질수록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인 이성적 토론은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참여숙의사이에는 일정한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 폭 넓은 참여와 깊이있는 토론은 양립하기 어렵다.

 

2) 숙의민주적 참여방식의 유형

정책현장에서 숙의민주주의 실천방법은 일반시민의 참여와 더불어 숙의과정을 거친 의사결정이다. 참여와 숙의의 조합방법에 따라 현실적으로 다양한 숙의민주주의적 참여방식이 가능하다. 숙의가 가능하려면 참여자의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한정된 규모의 참여자를 의미하는 소규모 공중’(mini publics) 개념이 등장하였다. 소규모 공중은 일반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무작위추출로 선발된 소수의 시민을 의미하지만 반드시 대표성이 보장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숙의적 참여방식으로는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시민배심원제(citizen’s jury),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s) 등이 있다.

공론조사는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작위로 추출된 100-500명의 참여자들의 숙의과정을 거친 여론조사이다. 시민배심원제는 미국의 사법배심원제도를 정책숙의에 적용한 것으로 무작위추출로 선발된 시민배심원 12-25명이 어떤 이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후에 사법배심원의 평결(verdict)과 유사하게 공동으로 정책을 권고하는 방식이다. 합의회의는 층화 무작위추출로 선발된 10-25명의 시민들이 대략 2주간 준비모임에서 선발된 전문가와 이익단체의 발표를 듣고 질의/응답 세션을 가진 후에 공동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방식이다.

 

3) 숙의민주적 참여방식으로서 공론조사

공론조사는 미국의 피시킨이 1991년에 제안한 이후 영국을 시작으로 호주, 덴마크, 미국,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공공정책결정을 위해 도입된 바 있다. 공론조사는 전통적인 여론조사가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피상적 인식을 조사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숙의적 요소와 여론조사를 결합한 것이다. 공론조사는 크게 3단계 절차로 이뤄진다. , 1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토론참여자를 선정하여 이들에 대한 학습과 토론과정을 거친 후, 2차 설문조사를 통해 공론을 파악하는 절차이다.

1차 설문조사는 기존의 여론조사방법과 같다. 1차 설문조사대상은 토론참여자 선정을 고려하여 충분한 숫자의 표본을 선정하여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조사의 경우 20,000명을 조사하였다. 1차 설문이 완료된 후 설문분석 결과를 토대로 의견분포를 고려하여 조사 응답자 중 대표성을 갖춘 토론참여자를 선정한다. 원전 공론조사의 경우 1차 조사완료 후 참여희망자 5,981명 가운데 500명을 무작위표본추출방법으로 선정하였다.

학습과 토론 단계에서는 선정된 토론참여자들에게 찬반 양측의 자료를 균형있게 제공하고 조사 주제에 관한 전문가 패널 토론과 종합토론을 실시하여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도록 한다. 또한 선정된 토론참여자들은 소그룹 분임 토론을 통해 조사 주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조사의 경우 종합토론회 참석자는 471명이었다.

2차 설문조사는 1차 설문조사와 동일한 설문을 통해서 선호의 변화를 파악한다. 이때 조사 참여자들은 1차 조사 때와는 달리 조사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정보를 제공받고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진행된 상태이므로 1차 설문조사와는 다른 의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공론조사의 특징은 동일한 설문으로 구성된 1차 설문조사와 2차 설문조사 간에 발생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선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한 피상적인 여론과 정보와 자료를 접한 후 충분한 학습과 토론을 통해 형성된 공론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공론조사는 이른바 여론 정치를 극복하고 주요 고려사항들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했을 때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4. 결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사회적 난제의 해결방안을 둘러싸고 진영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정부는 이해관계 당사자의 범위가 넓고 파급력이 큰 사회적 난제들에 대응하여야 한다. 새 정부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더라도 다양한 유형의 시민참여형 정책결정과 숙의민주적 정책결정절차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난제들을 슬기롭게 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