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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헬로비전] 한일관계의 어제 오늘 내일 : 라종일 전 주일대사
  • 작성자강수경
  • 작성일시2023-05-23 16:58
  • 조회수5

[원로와의 대화] 한일관계의 어제 오늘 내일

  •  윤경민 보도국장
  •  
  •  승인 2023.05.12 00:00
 

라종일 전 주일대사 "꼴 보기 싫어도 협력할 땐 해야"

원로와의 대화 한일관계의 어제와 오늘내일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전 주일, 주영 대사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전 국정원 해외·북한 담당 1차장

전 우석대 총장

 

 

윤경민: 안녕하세요? 총장님. 총장님이 주일대사로 계실 때 제가 도쿄 특파원을 했었죠. 대사직을 몇 년간 하셨죠?

 

라종일: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했어요.

 

윤: 그때와 지금 일본, 그리고 한일관계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개헌 움직임, 그리고 군사력 증강 측면을 볼 때 말이죠. 총장님이 보시기엔 어떻게 달라졌나요?

 

라: 일단 한일관계는 그때보다 훨씬 나빠졌죠. 그때 한일관계는 일본 측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엄청나게 컸던 시기였습니다. '후유소나'(배용준 최지우 주연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일본 제목인 ‘후유노소나타’ ‘冬のソナタ’를 줄인 말)에 이어 '대장금'(이영애 주연의 MBC 사극), 그리고 이른바 '사대천왕'(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원빈 등 일본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한류 스타 4명을 일컫는 말)이 크게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일관계가 좋았던 게 훌륭한 주일 대사 때문이었다고는 차마 양심상 말 못 하고요. (웃음)

 

윤: 한류 스타들이 크게 인기를 끌기 전에는 일본이 한국에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죠?

 

라: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영화 쉬리(1992년 개봉, 강제규 감독)가 일본에서 상영됐었잖아요. (영화 '쉬리'는 2000년 일본에 수출되어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인기를 끌었음) 상당히 흥행이 됐는데요. 문제는 그걸 수출하려 할 때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적어서 흥행이 안 될까 봐 한국이라는 말을 빼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측은 그게 말도 안 된다고 해서 넣었어요. 그러고 나서 한국, 일본말로 캉꼬꾸, 그리고 조센(조선의 일본어 발음)이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펼쳐 놓고 말해보라고 하니 일본인 절반이 지도에서 짚지를 못했어요.

 

윤: 네? 그 정도로 한국에 대해 몰랐단 말입니까?

 

라: 무관심했던 거죠. 한일 상호 간의 인식 수준이 달랐던 겁니다. 그런데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주일대사 재직기간)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한류의 인기가 폭발적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결정적으로 지난 정부(문재인 정부)에서 양국이 합의한 걸 뒤집은 게 문제였어요. 양국 간 합의(위안부 합의)도 일본이 무리하게 합의했던 거였거든요. 기시다 외상(당시)이 무리해서 (일본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합의한 건데, 우리(문재인 정부)가 깔아뭉개는 식으로, 처리 안 하니까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이 사람들(한국)과는 가까이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일본도 문제가 있지요. 그동안 일본이 사죄를 많이 했는데 한국은 왜 계속 사과하라고 하느냐고 하거든요. 하지만 사과라는 게 진심이 전해져야 하는 거죠. 때려 놓고 미안하다고만 해서 사과가 아니잖아요. ‘김대중 오부치 선언’으로 사과한다고 해놓고 딴 쪽에선 들고일어나서 잘못한 것 없다, 사과할 필요 없다, 이런 말이 민간 측이 아니라 무게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니 사과의 의미가 퇴색되는 거죠.

 

윤: 위안부 합의 자체는 일본이 상당 부분 성의를 표시한 거였던 건가요?

 

라: 우리의 입장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지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이 사과하고 유감을 표명하고 정부 예산으로 했으면 (치유재단 설립자금 10억 엔, 당시 한국 돈으로 109억 원  투입) 상당히 성의를 표시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 받는다고 했으면 몰라도 받고 나서 정권 바뀌고 다른 입장을 취하니까 일본이 문제를 삼는 거죠. 정부가 대일본 정책을 잘못 집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윤: 지난 정부요?

 

라: 지난 정부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말입니다. 1965년도 한일협정도 우리 쪽에서 보면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상황이 일본에서 나올 수 있는 자금과 산업 발전 필요 때문에 한 거잖아요. 지금도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뭔가, 라틴어로 힉 에트 눈크(Hic et Nunc: '지금 여기'라는 뜻. 외교용어로는 ‘현 상황에서’의 의미로 쓰인다),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 원수관계도 있고 나쁜 기업도 있을 수 있고 일본과 친하면 중국, 러시아가 싫어한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게 뭐냐, 그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 안보 말씀이시죠?

 

라: 안보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지요. 중국과 미국이 대결하는 상태이고 북한은 하노이회담 이후 무기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잖아요. 특히 전술핵까지 개발한 상황이잖아요. 전략핵은 딜을 위한 전략적 무기지만 전술핵은 달라요. 실제 실전용 무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필수입니다. 일본이 옛날에 잘못 많이 했지만 지금은 협력해야 할 때란 말입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 얘기해 줄게요. 매년 한중일 1.5 트랙 회담이 열리는데, 제가 한 번은 워싱턴에서 열린 회의 때 “이 미팅에서는 나라를 대표해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는 건데, 자기 나라만 옳다고 하지 말고 외교관도 아니고 지식인이니까 자국 비판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지낸 강성 인물이 “한국이 잘못했다. 약속을 어기고 다른 얘기하고 지속적으로 사과만 요구하고 그러니 한일관계가 최악에 빠진 건 한국 책임”이라고 주장하더라고요. 토론 마지막 날은 언론에 공개하는 회의인데 그 자리에서 우리를 정면 공격한 거죠. 그래서 내가 “한일관계가 지금 그렇게 나쁘다고 했는데 지금 한일관계는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말해줬죠. “16세기 말에 한반도를 침략해서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그리고 병자수호조약(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강압으로 외교권을 박탈했던 때보다 훨씬 좋은 편”이라고 말이죠. 그뿐 아니라 “1919년 3월 1일 전 국민이 독립을 외쳤을 때 일본이 비 무장 시위 군중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다 잡아가고 그랬는데 그때보다 지금은 얼마나 관계가 좋으냐” 그랬더니 회의 참석자들이 다 웃고 자기(일본 전 외무성 사무차관)도 웃더라고요.

 

윤: 그러네요. 임진왜란과 구한말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은 최악이라고 해도 비교가 되지 않겠군요. 그런데, 최근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와서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복원되지 않았습니까? 기시다 총리가 역사인식과 관련해 “1998년 한일공동선언을 비롯해 과거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지요.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어 마음이 아프다". 이 표현을 놓고 국내 정치권에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총장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라: 최소한 현 일본 상황에서 기시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일 겁니다. 그 이상은 할 수 없을 거예요.

 

윤: 왜요?

 

라: 자민당 내부에서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하고 그 이상 발언했다가는 국민 여론이 민감하니까.

 

윤: 그렇군요.

 

라: 일본이 근본적으로 나쁘지만 우리가 전략적으로 일본을 잘 상대하지 못했습니다. 새천년 초기에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좋았을 때 더 잘했어야 하는데, 야스쿠니 참배 문제라는 복병을 만난 거죠. 그때 우리 대응이 노련하지 못했어요. 또 이부스키(일본 가고시마현)에서 한일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청와대에서 반발했거든요. 거기 가미가제 기념탑이 있어서 안 된다고.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던 일본은 비행기에 폭탄과 편도 연료만 실은 채 출격해 미 군함에 충돌하는 자살특공대를 운영했고 그때 숨진 자살특공대원의 넋을 달래는 위령비가 이부스키에 있다. 이부스키에는 당시 자살특공대 기지인 이부스키해군항공기지가 있었다)

 

윤: 아, 저도 그때 청와대 출입기자여서 이부스키에 갔었어요. 정한론의 발상지여서 반대했다는 얘기는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라: 그래요? 아무튼 그래도 그걸(가미가제 기념탑 / 자살특공대 위령비) 잘 활용할 수 있잖아요. 대통령이 지나가는 길에 잠깐 내려서 군국주의에 희생된 젊은이들이다. 국가가 잘못해서 젊은이들이 희생됐다. 젊은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윤: 그러네요.

 

라: 회담 장소를 바꾸어 달라는 우리 요청을 일본 외무성은 거부했습니다. 회의 장소는 원래 초청국 측이 정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후쿠다 씨를 찾아갔어요. 외무성은 호스트 컨츄리(초청국)인데 가미가제 때문에 못 가는 건(이부스키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었죠. 그래서 제가 후쿠다 씨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후쿠다 씨가 지도를 꺼내서 아무 데나 찍으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총리(당시 고이즈미 총리)와 상의해서 한국이 바라는 대로 하겠다고 합디다. 그런데 결국 이부스키로 결정이 났어요. 일본 지도 내 어디를 찍어도 다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거든요. 우리가 만족할 장소가 없었던 겁니다.

 

윤: 노무현 고이즈미 때 야스쿠니 참배 문제도 시끄러웠죠?

 

라: 그때 외무성의 인사 한 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줬어요.

나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고 그곳에 전범들을 모신 걸 고맙다고 하려 한다고 말이죠.

 

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라: A급 전범(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들만 아니면 일본 제국이 훨씬 오래갈 수 있었다, 대만 오키나와 홋카이도 한반도 중국 동북 3성을 차지하는 큰 규모의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까지 침략해서 미국과 싸움 붙는 바람에 일본인 3백만 명이 죽고 원폭 투하 당하고 그런데 한국은 생각보다 일찍 독립이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곤란한 표정 짓더군요. (웃음)

 

윤: 아, 비꽈서 말씀하신 거군요.

 

 

 

 

라: 물론 일본제국주의는 패망하게 되어있었지요. 한국이 그렇게 쉬운 나라가 아니잖아요. 한국의 민족주의가 강하죠. 그런데 그때 만일 독립되지 않았다면 독립까지 얼마나 더 걸렸을지 몰라요. 그랬다면 우리 국어를 잃었을 수도 있어요. 국어를 잃으면 더 쉽게 동화될 수 있거든요. 영국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나 웨일스를 보세요. 자국 언어가 있었지만 영국에 통합되니까 언어가 없어졌잖아요.

 

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물 잔의 반을 채웠고 일본이 나머지 반을 가득 채우기를 바라는데, 일본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낸다든지.

 

라: 전범기업이 기금 못 낼 겁니다.

 

윤: 네? 왜요?

 

라: 냈다가는 강제동원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일본은 강제징용이 합법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잖아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때 얼버무린 거 있죠? "이미 무효다" 우리는 원래 불법이었으니까 (한일합병조약이) 무효라고 하는 거고 일본은 그때는 합법이었는데 이제는 무효라는 주장이죠. 왜냐하면 독일이 폴란드나 화란(네덜란드)에 배상한 것과 일본이 우리에게 배상한 건 성격이 다릅니다. 폴란드는 독립국을 독일이 침략한 것이죠. 일본 입장은 전시 때 (조선인) 노동자를 징용한 것도 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합병을 해서 같은 나라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강제징용을 불법징용이라고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한일 국교정상화 때 해결 안 된 문제를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한일합방 자체가 불법이라 무효니까 당시 노동자를 강제 징용한 건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고, 일본은 불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때 합의가 되지 않아 모호하게 남겨 놓은 것입니다. 그걸 (한국) 대법원이 뒤집은 거예요. '외교적 자제'라는 말이 있어요. 외교적 갈등사안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자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걸 안 한 거죠.

 

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내세워 대응하지 않았던 거죠?

라: 네, 삼권분립을 명분으로 그냥 놔둔 거죠.

 

윤: 강제징용 해법이 완전한 해결로 가기까지는 산 넘어 산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갈등이 봉합된다고 해도 외교청서, 방위백서, 교과서문제 등 독도문제와 역사왜곡 문제 등 늘 갈등 요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화해 분위기가 꺾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 그런 어려운 문제를 무리 없이 해결하고 국익도 추구할 수 있는 게 정치 지도자의 임무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이 그렇게 했잖아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정치인 거죠. 근데 그렇게 생각 않는, 혹은 못하는 정치인들이 있으니까 문제죠.

 

윤: 그렇군요.

 

라: 근본적인 잘못은 일본 지도자들에게 있어요. 일본이 자랑으로 여기는 건 아시아에서 서유럽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맞서 싸운 건 일본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못난 짓이에요. 서유럽 이기려고 부국강병 내세우며 서유럽을 따라한 겁니다. 안중근(의사)처럼 해야지, 극복해야 할 서유럽을 그대로 따라한 것 때문에 일본 국민 대다수는 애국심 갖고 호응한 거예요.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항공모함을 14척 갖고 있었어요. 지금 중국이 3척밖에 없으니 얼마나 많은 건지 상상이 가죠. 그게 다 일본 국민의 피땀으로 만든 거 아닙니까. 그때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 데 그걸 안 하고 있어요. 패전이라 못하고 종전이라고 하고, 미군 점령이라 못하고 미군 진주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런 걸 이해하면서 할 말은 하고 타협할 건 타협해야 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일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일본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큽니다. 일본 내수시장이 훨씬 크지 않습니까? 교역을 해야 해요. 에치슨라인을 왜 그었겠어요? 한반도 없이도 서방이 전략적 이해를 지킬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상당한 부분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겁니다.

 

윤: 우리 사회에 반일 정서가 무겁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인데요, 언제쯤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반일 정서의 무게가 가벼워질까요?

 

라: 저도 반일 감정을 갖고 있어요. 반일정서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감이 있다고 해서 교류를 안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친구 간에도 꼴 보기 싫어도 사업을 위해서는 협력해야 하는 건 해야죠. 그걸 혼동하면 안 됩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나도 독립운동가 가족 출신인데 (라종일 전 대사의 부친 백봉 라용균 선생은 독립운동가였으며 1960년대 보건사회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늘 그 얘기를 듣고 살았어요. 일본 지도자들이 못났다고 했었어요. 서양 제국주의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가시 돋친 말을 합니다. 나도 야스쿠니 참배하겠다고 하고, 한일관계가 지금이 가장 좋다고 하고, 미운 소리 할 땐 하고 협력하고 도움 받을 건 받고 해야 합니다.

 

윤: 총장님 말씀 듣다 보니까, 자존심만 내세울 게 아니라 진정한 국익을 생각해서 밉더라도 손잡을 때는 손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또 시간 내서 좋은 말씀 들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윤경민 보도국장  yoonkm5@lghv.net



※기사원문 : [원로와의 대화] 한일관계의 어제 오늘 내일 < 데스크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LG헬로비전 (lghellovisi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