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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의 현재와 미래 : 윤남근
  • 작성자윤남근
  • 작성일시2021-04-17 13:39
  • 조회수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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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남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1. 논의의 연혁

공수처 신설 논의는 1999년부터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인사 또는 검찰 고위직의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나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법무부, 검찰, 보수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되기를 반복해 왔다. 김대중 정부는 검찰총장 산하의 준 독립기구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기소권 없이 수사권만 가지는 공직부패수사처를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부패방지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관인 관계로 대통령의 권한만 더욱 비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 그렇다고 하여 국회가 공수처의 수사권 발동에 관여하도록 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리에 반한다는 주장 등의 반대론에 밀려 결국 공수처는 설치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측근의 비리와 소위 스폰서 검사사건,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검찰 고위직의 뇌물사건 등과 관련하여 당시 진보 야당이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2. 한국적 배경

공수처 설치 논의는 검찰의 비대한 권력, 그리고 정치와 검찰의 유착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출발했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권까지 가진 것에 더하여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반면 이를 견제하는 장치는 없다시피 한 점, 법무부의 산하기관인 검찰청 검사들이 감독기관인 법무부를 장악하고 법무부를 통하여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점, 법률전문가인 검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등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3. 공수처의 위상과 권한

이번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를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기구로 설계했다(공수처법3). 검찰보다 위상도 높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다른 범죄를 수사하다가 공수처법이 정한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공수처법24), 공수처는 검찰 등이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공수처법24).

공수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찰고위직에 대하여는 수사권, 기소권 및 공소유지권을 가지되, 대통령, 국회의원 등 다른 공직자에 대하여는 수사권만 가진다(공수처법3). 후자의 공직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는 수사기록을 송부 받은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공수처법26).

 

4. 위헌제청과 헌재의 결정

헌법재판소는 2021128일 보수야당 국회의원 100여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하여 일부 각하, 일부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은 경우에 제기할 수 있다(헌법재판소법68). 이 사건 결정에서는 재판관들의 다양한 반대의견이 제기되었는바, 여기서는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요점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다수의견

공수처의 구성, 공수처의 규칙제정권 등에 관한 규정은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어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해야 한다.

공수처의 수사대상 공직자(공수처법2)와 범죄(공수처법3), 수사처검사의 직무(공수처법8)를 규정한 조항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권력분립의 원칙, 평등권, 영장주의에 위반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

(2) 재판관 이선애의 반대의견

청구인들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청구인들이 기본권 침해를 받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청구인들의 청구는 모두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

(3) 재판관 이은애·이종석·이영진의 반대의견

위 조항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하여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4) 재판관 이종석·이영진의 반대의견

고위공직자범죄 중에는 형법상 직권남용직무유기와 같은 법관의 재판 업무 자체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범죄도 포함되어 있어 자칫 수사처검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법관의 재판 자체에 대하여 수사 등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바, 이는 법관이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공수처법이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만을 수사대상으로 함으로써 비고위공직자와 차별 취급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공수처법은 헌법에 위반된다.


5. 평가

(1) 현재 결정의 의미

헌재는 헌법소원이 된 조항에 관한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한정적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공수처와 같이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고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변화시키는 독립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헌법사항이라고 보아야 할 텐데, 헌법에 아무런 근거규정이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이러한 기관의 설립을 국회에 위임한 바 없다. 청구인들이 이 점에 관하여 강력히 주장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2)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의 효율성

공수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찰고위직에 대하여는 수사권, 기소권 및 공소유지권을 가지되, 대통령, 국회의원 등 다른 공직자에 대하여는 수사권만 가진다는 점이다(공수처법3). 후자의 공직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는 수사기록을 송부 받은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공수처법26).

공수처의 한정된 수사인력만으로는 청와대, 여당 정치인 등이 연루된 거대 부패범죄 사건을 수사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공수처의 설치가 공위공직자 범죄의 수사를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역기능을 할 우려가 있다. 한편 공수처의 독립성이 약화될 경우 정치인들의 부패범죄를 수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은 한층 커질 가능성도 있다.

(3) 자유민주주의 원리

민주주의 작동 원리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다. 정부가 법무부의 문민화 등 검찰의 위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에 공감한다. 그러나 공수처는 검찰과 사이에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분점하는 또 다른 권력기관인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권한의 분점과는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확립된 선진국에서 공수처 같은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공수처법에 대한 합헌결정이 났지만 머지않아 공수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바란다. 검찰과 경찰이 헌법정신에 충실하게 기능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