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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에서 벌어진 사상 첫 '한국 인권' 청문회 : 이정훈
  • 작성자윤남근
  • 작성일시2021-05-01 09:51
  • 조회수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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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 전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

지난 415일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Tom Lantos Human Rights Commission)는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명색이 동맹국인 한국이 인권문제를 놓고 북한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되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북핵 대응, 쿼드(QUAD) 참여 문제 등으로 한미 양국이 엇박자로 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청문회를 통해 한미동맹이 한층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데 있다.

사실 이번 청문회는 예고된 일이었다.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일찍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강행되면 그는 국무부가 발행하는 인권 보고서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에 한국을 인권탄압 감시국으로 올릴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안의 통과는 문재인 정부가 시민·정치적 권리를 지키는데 실패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조사하기 위해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작년 12월에 밝혔고, 결국 그 말을 지킨 것이다.

야당과 북한인권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권 여당이 대북전단금지법을 국회에서 강행처리 한 것에 대해 한반도 전문가로 유명한 영국 리즈대의 아이단 포스터 카터 박사는수치스러운 날”(a shameful day)이라고까지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됐을 때, 그리고 이번 청문회가 개최되면서 국제사회가 극도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 통용되는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개정안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위반했을 경우 따르는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3국에서의 전단 살포도 금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자국민 보호주장은 명분을 잃게 된다.

전단 살포와 관련된 법률 정비 및 법안 발의가 작년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한 김여정의 한마디로 시작됐다고 해서 야당은 이 법안을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조공으로 대한민국 입법을 갖다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고까지 했다.

국제사회의 반응 역시 혹독했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서 비롯된 비판 여론은 북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외부 정보 유입의 한 수단이 끊기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개정안을 비판하면서한국 정부가 자국민들이 기본적 인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북한의 김정은을 기쁘게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비난했고, 휴먼라이츠재단(HRF)의 토르 할보르센 대표는 유엔 등 국제 사회에 한국 정부를 제소해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나 그레이텐스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더 나아가문재인 정권이 이번 조치가 남한의 가장 큰 자산인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치는 일인지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바이든이 추진하는 가치 기반 파트너십을 추구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도 손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를 기반한 동맹정책이 자칫 잘못하면 한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자유민주주의, 법치 등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동맹국 협력체계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홍콩 선거제 개편,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등 소수민족 탄압을 비판하며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내세워 시진핑 주석을 몰아붙이고 있다. “중국은 인권 유린 대가를 치를 것이며 시진핑 주석도 그걸 안다고까지 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미국에게 예외일 수는 없다. 인권을 강조하면 한반도 평화 구축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해서 북한이 단 한번이라도 호의적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열린 미 의회 청문회는 어떻게 보면전단 금지법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그 동안 취해온 일련의 대북 인권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경고일 수도 있다. 3년 연속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 공동 제안국 참여 거부, 국제법을 무시한 북한 선원 2명 강제 북송, 국내 북한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조사 등의 조치들은 그 동안 미국을 불편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겠다는데 한국은 북한인권을 무시하고 중국과 북한 눈치만 보면서 미국과의 갈등을 초래한 것이다.

통일부는 최근 미 인권 청문회에 대해국내 청문회와 성격이 다르다,” “의결 권한이 없다는 등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조치를 애써 일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08년 사망한 톰 랜토스 전 하원의원을 가족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알고 한 언급인지 잘 모르겠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 인권과 가치를 앞세워 국제질서를자유진영 대 중국구도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자유진영에 있어야 할 한국이 미 인권 청문회 대상이 되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일류 보편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북한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것을 자초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 인권 청문회에 서는 치욕은 앞으로 계속 반복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