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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방역과 인권 : 서창록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21-06-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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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록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지난 3월 “나는 감염되었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작년 3월 뉴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출간 후 신문방송 기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기자들의 관심은 주로 우리의 방역정책이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옳은 것이냐는 데에 쏠려있었다.

 

방역과 인권, 둘 중 무엇이 더 우선인가. 사실 방역도 생명권과 건강권과 같은 중요한 인권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어서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과 공공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은 둘 다 인권적 측면에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확산초기에 분명 발빠른 방역정책으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개정되었던 감염예방법이 큰 역할을 했다. 이 법으로 정부는 개인의 정보를 손쉽게 빼낼 수 있었고 그 덕에 방역에 비교적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할 때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고려는 크게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가 지나치게 공개되고 사생활을 심하게 침해하는 부작용이 있었고, 당사자들은 그로 인해 심한 고충을 겪어야 했다.

 

내가 감염된 작년 3월은 팬데믹 초기여서 확진자가 많지 않았던 때이다. 확진판정을 받은 후, 내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신용카드와 휴대폰의 사용내역을 이용하여 나의 이동경로는 손쉽게 파악되었고, 감시카메라를 통해 나의 동선은 확인되었다.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구청 홈페이지를 거쳐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이름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바로 알아챌 정도의 기사였다). 나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정보와 사생활 보호를 매우 중요시하는 서구 국가에서의 방역정책은 어떠한가. 마스크의 의무 착용이 개인의 자유권 침해라고 거부하는 동안 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졌고, 개인정보 수집을 통한 동선추적이 불가능한 탓에 너무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다. 과연 이것이 인권 존중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일까. 개인의 정보와 사생활 보호가 공공의 안전과 생명권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할까. 개인의 자유에 방점을 둔 서구의 인권 관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역정책과 인권정책에 정답은 없다. 시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난다. 우리는 우리 방역정책의 공과 실을 꼼꼼히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이 팬데믹 시기에 더 중요한 인권의 문제는 차별과 혐오, 사회적 배제와 낙인이다. 이것은 디지털 혁명의 시기에 더 큰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면서 과거와 같이 개인의 정보를 온전히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집단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가 차별과 혐오의 무기로 사용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질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만성적으로 고착화된 사회구조적 차별에 기인한다. 따라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방역도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확진자가 되어 병원에 격리되어 있을 때, 개인정보의 노출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나를 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나는 한순간 해외에서 코로나를 가지고 들어온 몹쓸 인간이 되었고, 나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만이 아니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그런 고통을 겪었다. 미디어에서는 코로나19의 확진자들을 위로하는 내용보다는 온통 그들을 경계하고 질책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개인의 소중한 정보와 일상이 욕과 비난을 뒤집어 쓰거나 동정과 연민으로 포장되어 전시되었다. 코로나19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공감해 보았는가.

 

이러한 고통은 사실 우리 사회에 소외계층이 이미 겪고 있는 문제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내가 귀하게 얻은 교훈은 나의 짧은 경험을 통해 차별당하고 배제된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정보인권의 문제도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해서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두어야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 백신 접종이 늘면서 마스크를 벗고 다닌다는 뉴스들이 나온다. 곧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새로운 인권관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 공감과 배려의 마음 없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권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백신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불평등은 가속화되고 취약계층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도 백신이 한 개도 없는 국가들이 더 많다. 그곳은 지금 변이바이러스가 생기면서 더욱 위험에 빠지고 있다. 전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라고 본다면, 건강한 선진국의 젊은 층보다는 위험 국가의 취약계층에게 백신이 더 빠르게 공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팬테믹 이후 더욱 어둡고 자유롭지 못한 사회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백신민족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책의 마지막에 “남을 배려할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라고 썼다.

 

202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