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비대면 시대의 대학교육
2019년 미국 대학에서 연구 학기를 보내며 읽었던 책 중 하나가 ‘교실이 없는 시대가 온다: 디지털 시대,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원제: Rewriting Education)’ 이다. 당시 미국의 애리조나대학이나 미네르바대학 등의 혁신적인 교육 사례를 조사하며 읽은 책이었는데 최첨단 디지털기술을 교육과 접목하여 더 이상 교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학습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교실이 없는 시대’는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우리나라 대학의 원격교육은 10% 내외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대학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전면 비대면 원격수업 전환이라는 대변혁의 시기를 맞게 되었고 지난 2년여 동안 새로운 교육방식, 콘텐츠, 인프라 등 전방위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숙명여대 역시 디지털교육으로의 전환을 위한 환경 구축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정보혁신처’를 신설하여 학내 전담 조직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원격교육지원센터를 통한 학생과 교수의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교내 산재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통합하는 데이터 웨어하우스(data warehouse)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설계하여 교내 구성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통합관리시스템에 저장된 교내 데이터를 AI, 머신러닝 등의 최신 기술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의사 결정 및 교육 체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숙명 메타버스 플랫폼(스노우버스)을 구축함으로서 비대면 교육으로 인해 대학 캠퍼스 경험 및 학교 문화 생활에 갈증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가상공간을 통해 실질적 학생 교육과 생활의 도구로 활용하는 시도를 하였다. 메타버스 내 ‘숙명버츄얼오디토리움’에서 강의가 이루어지는 점을 학생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속한 느낌’을 더 크게 받으며 강의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하였다. 또한 학교의 축제를 가상공간에서 여는 것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숙명 버츄얼캠퍼스 내에서 동아리 회의, 도서관 이용 등 실질적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지속적인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대학교육의 온전한 성취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알고리즘과 로봇, AI가 대신할 수 없는, ‘감성’, ‘창의성’, ‘상상력’과 같은 인간적 요소에 대한 교육이다. 얼마 전 종로구를 비롯한 몇몇 어린이집 대상으로 ‘투명마스크(소통마스크)’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어린이들의 언어 및 사회성 습득이 제한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한다. 최근 11월부터 위드코로나 단계로 진입하면서 대학 대내외적으로 내년부터 대학도 전격 대면수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0년 입학한 학생들 중 아직 한 번도 학교에 와보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내년에 3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를 밟아보게 되는 현실 앞에서 대면수업으로의 전환은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이 있겠으나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의 현장에서는 이미 온라인 수업에 적응이 된 교수와 학생들이 비좁은 강의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이뤄지는 수업보다 오히려 온라인 수업이 안전성도 보장되고 소통도 더 원활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집을 구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 해소, 통학을 위한 시간 절약, 편한 아르바이트 시간 등을 이유로 들었고, 교수들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최근 교내 통계자료에서 학생들이 대면을 원하는 것은 수업보다는 오히려 동아리 활동이나 캠퍼스 공간에서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나는 활동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도 유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다. 대학교육이 더 이상 예전의 전통적인 교육으로는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대면·비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형 교육으로의 전환이 적합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가속화된 디지털 교육기술의 발전은 대학교육의 학습경험을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전환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본질, 목표 및 교육철학에 대한 깊은 통찰에 바탕을 둔 교육과 디지털기술의 활용이 접목되지 않는다면 대학교육은 또 다른 퇴보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팽배하다. 얼마 전 숙명여대 115주년 특강 시리즈에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60대쯤의 자화상을 그려보자’라는 제목의 강연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였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시선과 비전을 개인에게 두면 개인만큼 성장하지만 국가와 세계를 위해 시선과 비전을 두면 어느새 60쯤 되었을 때는 그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란 이야기와 함께 독서하지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책을 읽는 개인이 지도자가 되며 독서하는 민족이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구호가 아닌 우리 모두의 신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년의 철학자에게서 대학교육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 대학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지성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육시스템 구축의 과제를 우리 모두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윤금 숙명여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