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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국제정의평화인권재단 출범에 즈음하여 : 김병일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21-12-13 10:07
  • 조회수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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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일 -

  음력 9월 보름 둥근달을 벗 삼아 산을 넘어 도산서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송상현 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송상현국제정의평화인권재단(Song Sang-Hyun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Justice, Peace and Human Rights Foundation)의 출범행사에서 축사를 해달라는 것 이었다.

  안동 도산서원에서 15년 가까이 선비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필자에게 정의 평화 인권재단의 행사에 축사를 부탁하시다니... 고사를 하려했더니 전문가의 축사와 별도로 아웃사이더에게도 들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져 제자들이 필자를 추천해 왔기에 요청하는 것이니 수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거듭 사양하는 것도 예에 어긋남을 알기에 받아들이고 난 다음 재단의 목적과 사업내용, 추진 동기를 알아보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대학에서 송 선생께 지도받은 제자들은 스승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12년 동안 재판관과 소장으로 계시면서 이룩한 빛나는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아 앞으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이 재단을 설립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 범죄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른 수괴를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과 전혀 무관한 독자적 국제재판소이다.

  송 선생께서 이 신설재판소를 맡아서 회복적 정의와 치유적 정의까지도 아울러 실현하기 위해 산하 「피해자 신탁기금」을 통한 피해자 보호 지원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였다. 이를테면 태어나서 책을 구경 못한 어린이에게 교과서와 학습도구를 제공하고 손발이 잘린 주민에게 의수족을 장착하고 도끼 들고 싸울 줄 밖에 모르는 주민들에게 평화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아프리카 내전 현장을 찾았다.

  또 World Bank UNDP 등 국제지원기구들을 설득하여 피해국에게 경제 원조를 지원하기 전에 자금의 일부를 정의부문에 투자하도록 역설하면서 5대양 6대주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제자들은 스승이 이룬 업적과 추구가치에 공감하며 이를 재단에서 점차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시아 대륙에만 없는 인권재판소를 설립하고 그 본부를 유치하여 서울을 아태지역의 정의 평화 인권의 허브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도 포함되어있다.

  이 분야에 어두운 필자가 생각해도 송상현재단은 의미가 아주 크다 하겠다.

  먼저 추구하는 가치(정의, 평화, 인권 문제)가 이 시대에 아주 절실한 과제라는 사실이다. 그간 수많은 곳에서 노력하였으나 세계 각처에서 침해와 다툼의 파열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음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 중견 학자들이 앞장서 한국이 배출한 최고 전문가 송상현 선생님의 명의를 걸고 서울을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법적 수도로 추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법률분야라는 소프트파워까지 선진국에 다가서고 있으니 너무나 기쁘다.

  더구나 이 일이 송상현 선생께서는 일체 관련이나 간섭 없이 이 분의 제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사제지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처럼 거룩한 길을 걸어가시는 분을 The platform을 인연으로 가까이 뵐 수 있어 필자도 기쁘기가 그지없다

  재단이 아태지역을 넘어 인류사에 길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한다.

  먼저 정의 평화 인권을 그동안 부르짖고 노력하였으나 날로 더욱 위협받고 있다. 자기 편 주장만 정의라고 하고, 인권 유린은 더 늘고, 자기나 자국의 이익에 어긋나면 다투고 전쟁도 불사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서 역사적 전개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정의 평화 인권이라는 지금 추구하는 가치는 서양의 절대왕정의 압박과 압제에 맞서 쟁취한 시민사회의 획득물이다. 시민사회에서 개인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린다. 여기서 타인은 당연히 동등한 시민을 뜻한다.

  그렇기에 근대 시민사회 발전 과정에서 열악한 집단, 다른 문명, 다른 생명체에 대하여 침해하는 문제가 미해결 과제가 되었다. 지나간 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착취와 억압, 나치의 잔인한 유태인 학살이 이어졌고 지금도 약자에 대한 학대, 동물의 대량 살상 소비와 엄청난 자연 파괴 등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악한 일들이 걷잡을 수 없게 벌어지고 있다.

  정의 평화 인권 문제는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양의 유학에서는 더 본질적으로 다루었다. 인간에게는 욕망도 있지만 고귀한 선한 본성이 있고 이 선한 본성을 존중하고 가꾸는 사상이 다름 아닌 유학이다. 유학에서 만인은 형제, 만물은 이웃이다. 이를테면 맹자는 올바름[義]을 어른을 공경하는 경장(敬長)으로 여기고 과거의 수고로 오늘이 있는 것이라는 의식으로 살면서 ‘자신이 조건 주어진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만 동시대인들에게도 정의롭게 그 인권을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유학자 퇴계는 하녀의 자식과 자기 증손자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동등하게 바라보았다.

  오늘날 진정한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인류의 종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의 상호 존중과 배려는 물론 지구촌의 생명체는 모두 평등하다는 유학적 가치가 되살아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송상현국제정의평화인권재단에 너무 큰 과제를 던진 듯하여서 마음이 무겁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