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기도문 중에 ‘주님 저에게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요’ 라는 기도문이 있다. 이 기도문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현실세계에는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고대 철학에도 반영되어서,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Epictetus)는 현실세계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한한 능력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근본이라고 인식하였다.
에픽테토스가 현시대에 살고 있다면 과연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디지털 혁명이 만들어낸 현실세계에 대응하는 디지털 공간의 출현을 알았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불리는 컴퓨팅 능력의 확대, 인터넷의 보급, 확산과 스마트폰 대중화를 기반으로 전개된 디지털 혁명은 현실세계에 대응되는 디지털 공간을 창출하였고, 디지털 공간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빠른 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으로 지구상의 16세 이상 성인은 평균 인터넷을 하루 6시간 42분 사용하고 있는데, 수면을 취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1/3 이상의 시간을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게임 등을 통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확대, 전자상거래를 통한 디지털 상품 및 서비스의 성장, 소셜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소통 및 교류의 일반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에 기반한 인공지능기술의 발전,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와 NFT(Non-Fungible Token)를 통한 클립토 경제(Crypto Economy)의 확대로 대변되는 디지털 혁명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사회, 경제, 문화 등 현실세계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초래하였고,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디지털 공간을 창출하였다. 디지털 전환 과정을 통해 인류가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디지털 공간에서의 경제, 사회적 활동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2021년 10월 대표적인 글로벌 빅테크(Big Tech) 기업인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Meta로 변경하였고, PwC는 전세계 메타버스 시장규모가 2021년 1,490억불에서 2025년 4,760억불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메타로 개명한 페이스북을 비롯해서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디즈니, 아디다스, 나이키, 구찌와 같은 전통기업들도 메타버스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하였고, 대표적인 글로벌 정보통신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도 금년도 전시회 키워드로 메타버스를 제시하였다.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1992년 소설 ‘Snow Crash’에서 처음 사용된 후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일반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이제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용어의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면 일반인은 그 뜻을 답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소셜 커넥션에 기반한 3D 가상세계 네트워크로 인터넷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의하는 전문가들이 있는 가 하면, VR(Virtual Reality), AR(Augmented Reality) 등과 관련된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신조어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하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앞으로 메타버스가 어떻게 발전할 지 예측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인터넷이 어떻게 진화할 지 예측할 수 없었듯이, 앞으로 메타버스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과연 인터넷이 발전했던 것처럼 메타버스가 진화를 거듭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지는 주의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물리적 공간에서 하던 대부분의 일들을 가상공간에서 하려고 할 것인지, VR, AR 기기들이 오늘날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와 같이 일상적인 디지털 기기가 될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메타버스가 잠시 유행하는 신조어(buzzword)에 그칠 지, 새로운 시대정신(Zeitgeist)이 될 지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우리의 삶에서 디지털 공간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계속 증대될 것이고, 어떠한 디지털 기술이 이러한 변화를 선도할 것인지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국가, 기업, 개인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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